미스터톤™ / Skyraider

https://brunch.co.kr/@skyraider
Photo By Skyraider Nazca가는 길. PERU
요즘 아버지와 함께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올릴 글들의 자료사진을 올리기 위해 예전 아버지의 앨범을 꺼내서 스캔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사실 동생과 내가 아버지의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드리려고 했지만 여태 게으름을 피우다가 이제야 그 첫발을 떼고 있는 중인셈인데....쌓여있는 데이터들이 상상외로 많아서 솔직히 정리하랴, 글을 올리랴 나름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스캔하던 사진 중에 내 눈을 붙잡았던 사진. 아버지 나이 스무살, 말로만 듣던 M-1 소총을 들고 학교에서 훈련중에 담긴 이 사진을 보니 아버지께서 살아온 시절과 세월의 무게가 새삼스러워진다. 아버지와 내가 글을 올리고 있는 블로그는, https://brunch.co.kr/magazine/oceangoing 모쪼록 많은 이들이 찾아와서 삶의 흔적들을 많이 보아주길..그리고 댓글도 좀 많이 달아주길 기대해본다 - 나보다는 아버지께 큰 힘이 될듯.
콜롬비아에서 Photo By Skyraider Santa Marta, Colombia 뱃사람들이 드나드는 항구에는 다른 동네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 펼쳐지는데 전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그 풍경들은 공통된 모습 하나씩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항구의 여인들'이죠. 긴 항해를 하고 항구로 들어온 뱃사람들에게 가장 원초적인 욕구인 '성욕'을 해결해주는 사람들. 예전 선장님에게 '발기부전 유람단'이라는 놀림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사진이나 찍으러 돌아다니는 저도 가끔 이 사람들을 만나며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죠, 말도 통하지 않는데 옆에 다가와서는 다짜고짜 유혹하려고 애쓰는 이들을 만나는 모습이란. 하지만 많은 수의 선원들이 그 일에 동참(?)하고 있기에 나만 아니라고 핑계를 대려니 궁색하기 이를데 없네요. 다만, 다른 나라 여인네들의 품까지 파고들 깜냥도 없고 그럴 생각도 들지 않아서라는 것이 가장 마땅한 표현일 듯. 그런 힘은 아껴둬야한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ㅎㅎ 제가 승선하고 있는 배(벌크선)는 원자재를 수송하는 특성상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짐을 싣는 항구의 경우, 이른바 후진국이거나 개발도상국인 경우가 많습니다. 주로 수입하는 쪽이 잘사는 쪽이고 수출하는 쪽은 여전히 가난에 허덕이는 나라들인 것이죠. 게다가 남미의 경우, 남성들보다 여성의 성비가 높은데다 여성이 제대로 된 직장을 갖기란 애초에 좋은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지 않았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많은 여성들이 매매춘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콜롬비아의 경우, 남성 직장인의 월평균 수입이 300불 정도라고 하니(우리 배에 올라와 있던 Agent에게 확인한 얘기), 하룻밤에 100불이 가까이 지불되는 매춘에 대한 댓가를 거부하기에는 '가난'이라는 멍에가 너무 크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가톨릭의 영향으로 낙태를 거부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 많은 남미의 경우, 당장 먹고 살기 위해 몸을 파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전언을 듣고 나니 그동안 다녔던 멕시코, 페루, 콜롬비아의 항구의 여인들의 삶에 대해 연민의 감정부터 여러가지 마음이 교차됩니다. 아래의 글은 콜롬비아와 그 곳에서 만난 그'항구의 여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열흘동안 항구가 뻔히 보이는 곳에 닻을 내리고 매일 땅만 바라보고 있다가 막상 밖에 나가려니 만사가 귀찮아지는 귀차니즘에 사로 잡혀있는데 3항사와 타수들이 나가자고 꼬신다. 쇼핑센터가서 필요한 물건들도 사고, 오랜만에 육지 음식으로 곱창도 채우자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더군. '단 거 사다 먹어야지!!!' 육지에서는 거들떠도 안보던 과자나 초코렛이 항해 중에 왜 그리 생각나던지....나가서 건포도랑 초코렛, 과자라도 사와야겠다고 생각하고 나갈 차비를 시작했다. 맞다...치약도 떨어졌지...본선불로 받았던 달러를 좀 챙기고 홀애비 냄새나는 작업복도 벗어버리고 나니 이미 기분은 바깥을 돌아다니는 듯. 넉살좋은 아줌마 삐끼, Lady 항구를 나오자마자 웬 뚱뚱한 아줌마가 우리를 부른다. 자신을 Tourist라 소개하며 관광 가이드를 해주겠노라고 말하는 아주머니. 그녀의 이름은 우습게도 Lady였다. 뭐 스스로를 그렇게 소개했으니 그 이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짧은 영어로라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이 필요했기에(남미 사람들은 영어를 정말 '한 글자'도 못알아듣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동행을 허락했다. 지나고 보니 그녀는 우리에게 따로 수고비를 받지는 않지만 우리가 타는 택시비나, 기념품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택시기사나 상점 주인이 그녀에게 일정 부분 수수료를 내주는 구조로 돌아가더군. 하지만, 그녀에게 가장 큰 수익은 아가씨들을 뱃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받는 '소개비'였다. 하지만, 애초 우리의 목적이 '쇼핑'이었기 때문에 '두 유 원트 세뇨리따?'라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가로젓고 쇼핑센터로 가자고 말했지. 그때 그녀의 얼굴에 스치던 한 줄기 실망의 빛...미안해요 아줌마~ 이 콜롬비아 촌구석에도 '까르푸'가 들어와 있어서 그 곳에서 그동안 섭취못한 단 것들을 마음껏 구입하고 시내 중심가(이곳 사람들은 '센트로'라고 부르는)를 거닐고 있으려니 한떼의 아가씨들이 슬그머니 우리 일행들 사이로 끼어든다. 우리의 아줌마와 계약관계로 맺어있을 것이 분명한 남미 아가씨들. 마음이 동한 몇몇이 흥정을 하는 동안 나는 동네를 돌면서 셔터를 눌러댔지. 그 사이 흥정을 마치고 여기저기 흩어진 일행들..쇼핑만 하자더니...-_-;; 그즈음 더위에 지쳐 사진찍는 것도 힘겨워져 버린 난 Lady에게 시원한 맥주를 파는 바를 알려달라 했고 그녀를 따라가 해변가 Marino라는 이름의 노천 바에 앉아 콜롬비아 맥주(이름도 Club Colombia)를 훌쩍이기 시작했다. 쌍둥이 엄마, Salana 내 옆에 앉아 맥주를 축내는 아줌마. -_-;; 뭐 그다지 큰 댓가를 지불할 것은 아니었기에 기꺼이 함께 마시기 시작했지. 그런 와중에도 계속 세뇨리따 필요없냐는 그녀에게 난 'I'm Catholic.'이라고 짧게 말해줬다. 남미 사람 99%가 가톨릭 신자인 상태에서 이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지만 사실 멕시코에서도, 페루에서도 이 말을 하고 나선 그 누구도 더이상 매달리지 않았었지. 콜롬비아 아줌마 Lady 역시, 이 말 한 마디에 자기도 가톨릭 신자라며 반가워하고는 더이상 세뇨리따 이야기는 하지 않더군. 다만, 원하는 바를 못이룬 웬 아가씨가 Lady와 아는 척을 하며 슬그머니 빈자리를 채우고 앉는다. 이런...군 식구가 하나 더 늘었군. ㅠ.ㅜ 그녀의 이름은 Salana, 열여덟에 웬 놈팽이 같은 녀석이 덜컥 임신시킨 바람에 졸지에 쌍둥이 엄마가 된 스물 여섯 살의 싱글맘이었다. 남편을 묻는 내게(사실 Lady가 중간에서 짧은 영어로 통역해준 것이지만)두 손을 벌리고 모르겠다는 제스쳐를 보이는 그녀. '아 이 아가씨도 부나비처럼 여기저기 사고만 치고 떠나버리는 남미 남자들의 피해자구나.'란 생각이 번쩍 들더군. 아이를 낳기도 전에 자기는 모른다며 떠나버린 남자와 달리 그녀는 손쉬운 낙태를 택하지 않고 두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아이 둘 딸린 가난한 남미의 미혼모가 택할 일이라곤 웃음과 몸을 파는 일 밖에 없었다는 어디서 많이 들은 듯한 고단한 이야기를 들으니 차라리 그녀의 삶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주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마저 들더군. 피곤한 모습으로 술 잔을 기울이면서도 아이 이야기를 꺼내니 눈이 번쩍이는 그녀. 여덟살, 말썽꾸러기 둘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타향에 나와 떠도는 그녀 역시 아이들 이야기에 눈을 번쩍이고 잠깐 화색이 도는 ....그녀는 천상 어머니였다. 하지만, 곧 현실로 돌아와 다시 우울해지는 모습으로 말없이 맥주를 넘겼다. 맥주라도 원없이 사주어야겠다는 내 생각과 달리 그녀는 두 어병의 맥주를 마시자마자 '안녕'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아무래도 그저 맥주만 마셔서는 생활이 되지 않을 그녀의 상황이 그려지며 함께 Adios해주었지. 이래저래 고단한 일상을 사는 이들의 만남으로 더 피곤해져가는 나. 슬그머니 배로 돌아갈까하는 생각이 들때 쯤, 또 한 사람의 아가씨가 자리를 채워앉는다. 완전 동네 호구가 된 느낌. -_-;; 대륙전체가 여초현상에 시달리는 남미 작년 이 맘, 페루에 입항했을 때 우리를 나스카까지 안내했던 택시기사 멘도자는 페루의 남녀성비가 3:7이라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약간은 과장이 섞여있을거라 여겼지만 여성 7에 남성 3이라는 성비는 예사롭게 지날 수 없는 이야기로 들리더군. 게다가 우루과이와 페루, 아르헨티나에서 10여년을 보냈던 동료는 이런 이야기도 덧붙혀주었지. "남미 남자들은 그냥 우리 눈으로 봐도 참 쓰레기 같은 녀석들이 많다.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려놓고 나몰라라 책임지지 않는 놈들이 대부분이지. 남미 어디를 가도 온동네에 생과부들로 넘쳐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어. 예전 함께 배를 탔던 양반하나는 그냥 그 곳에 눌러앉아 그런 아가씨와 살림 차리고 결혼까지 하더라구."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남미 전체가 여초현상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들어온 터라 이런 얘기를 들으며 남자들의 염치없음에 공연히 분노 했었지. 그야말로 '공연한'분노였지만 여초현상이 아닌데도 염치없는 남자들이 많은 우리나라도 생각나더군. -_-;; 어느 나라에서는 남아선호로 인해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여아들이 넘쳐나고 지구반대편에 어느 나라들은 너무 많이 쏟아져나오는 여아때문에 문제가 되고...신이 원래 정해둔 성비를 사람들이 임의로 망쳐놓으면서 공연히 엉뚱한 곳에서 그 성비가 맞춰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려움을 겪을 것이 너무나 뻔한데도 지우지 않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머니들의 모습도 우리의 그것과 많이 다르게 느껴지고. 너무나 당당한 싱글맘 Bella 졸지에 아가씨들 휴게실로 변해버린 노천바 Marino의 내 자리에 슬그머니 자리를 차고 앉은 새로운 아가씨의 이름은 Bella. 역시 스물(!)에 아이 하나를 키우는 싱글맘이었다. 아버지 없는 아이들이 유행처럼 느껴지는 상황이라 적잖게 당황하기 시작했는데 묻지도 않은 내게 Lady를 통해서 별 이야기를 다한다. '남들보다 싸게 해줄 수 있지만 가슴은 안된다. 가슴은 내 아이를 먹이는 젖이 나오기 때문에 병균에 노출시킬 수 없다. 한 시간 이상은 안된다. 일찍 집에 가야하기 떄문.'이라는 말을 쉬지도 않고 늘어놓는 그녀. 워낙 당황스러운 말들의 연속이라 황당해하는데 Lady가 뭐라고 그녀에게 일러주자 그냥 싱긋 웃으며 맥주나 한 잔 사라고 한다. 아마도 아까 내가 했던 이야기를 재방송 한 듯. '저 친구 가톨릭이래.' -_-;; 빨리 가야하고 아기 젖도 줘야하는데 맥주는 왜 마시냐는 불멘소리에 '목이 말라서'라고 짧게 답하는 그녀. 갑작스레 젖병에 맥주를 담아 아이를 먹이는 상상이 떠오르더군. 하지만, 그녀 정확히 한 병만 마시고 미련없이 안녕인사다. 손을 흔들어 보내주고 어지러워진 머릿 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무 짓도 하지 않고도 아가씨 둘을 한번에 상대한 듯한 피곤함이 닥쳐오던터라 더 이상 맥주를 마시기도 어려워지더군. 그제서야 테이블을 살펴보니 '아뿔사' 어느새 스무 병을 넘고있는 우리 테이블의 음주량. '이 아줌마야, 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마신거냐?' -_-;; 단 네 병에 술 기운이 오른 나와 어느새 열 병의 맥주를 나발불고 있는 Lady...-_-;; 마침 일을 마치고 돌아온 일행들과 배로 돌아가면서 슬그머니 자리의 술값을 계산하려 하니 Lady가 그냥 가라고 손짓이다. 내 자리에서 마신 것이니 내가 계산하겠다고 하자 10,000페소(우리돈으로 6,500원 정도)짜리 한 장을 가져가며 이거면 되었다고 하는 그녀. 더 실랑이하면 실례가 될듯해서 일어나는 내 주머니로 슬그머니 무엇인가를 밀어넣었다. 바삐 자리를 뜨느라 확인도 하지 않고 배에 돌아왔고, 그제서야 그녀가 넣어준 것이 기억이나 살펴보게 되었지. Magnificat 루가복음 1장 46절부터 55절까지의 말씀이 빽빽하게 적혀있는 상본(예수님이나 성모님, 혹은 성인들의 그림이 그려져있는 종이. 가톨릭 교회에서 널리 쓰는 양식)이 그녀가 내 주머니로 밀어넣은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하루종일 나를 중심으로 돌던 세상이 모처럼 제자리로 찾아든 느낌이 들었다. 다시 먼길 떠나는 여행자에게 축복을 비는 어느 콜롬비아 아줌마의 마음이 느껴졌다고 할까. 하루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겉돌던 이방인으로 지내다가 마지막엔 오히려 그들에게 축복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니 오히려 술값을 다 내지 못하고 돌아온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Mi alma glorifica Senor.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Y mi espiritu esta transportado de gozo en ei Dios Salvador mio.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뛰니 Porque ha puesto los ojos en la baje-za de su esclava; por lo tanto ya desde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ahora me llamaran bienaventurada to-das las generaciones.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연이라고는 없고 누군가가 마련해둔 길을 걸어가며 깨닫는 과정이 삶이란 것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시간을 달려온 듯 하다. 어쩌면 콜롬비아에서 만난 이들의 이야기와 그 마지막도 그 과정 중에 하나였다는 것을 새삼 느껴버린 듯. 긴 여행의 가운데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들도 대양을 가로지르며 하나하나 스쳐 지난다. 모쪼록 그들에게도 신의 가호가 함게 하길.
1973년 9월 1973년 9월, 엄마와 함께 덕수궁을 찾았던 두 형제. 형은 이제 마흔 여섯, 동생은 이제 마흔 넷. ...어머니는 이제 일흔하나.
Lifeboat Photo By Skyraider 2010.02.09 Indian Ocean 구명정을 볼 때마다 과연 배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저걸 내려서 퇴선하여 옮겨탈 시간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가는 항구마다 항만검사관들이 가장 먼저 시비를 걸고 들어오는 것이 구명정이었다. 특히, 호주의 경우 PSC(Port State Control)검사관들이 구명정에 갖는 관심이 다른 곳보다도 유별난데, 들어가는 고리, 구명장비 하나하나를 죄다 끄집어내놓고 뒤질 정도였다. ...어느새 4년이 넘은 이야기. 아직도 배 안에서 살려달라 외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듯 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정말 미안하다.
Photo By Skyraider 바다는 늘 좋은 낯만 보여주진 않았다. 물론 아름다운 노을이나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미리내에 넋을 놓게도 만드는 공간이 바다였지만 한 번 뒤집어지면 용서없이 요동치며 수십년을 바다에서 보낸 잔뼈굵은 뱃사람들도 얼어붙게 만드는 곳 또한 바다였다. 두 공간이 다른 공간이 아니라 같은 공간이었다는 것...어쩌면 선배 뱃사람들은 그래서 바다를 변덕많은 여인네에 비교하여 그 곳을 She 혹은 Her라 부르게 된 것이겠지. 그 변덕많은 바다가 또 수많은 생명을 집어 삼켰다. 다만 바다가 작정하고 그들을 집어삼킨 것이 아니라 멀쩡히 침묵을 지키던 바다로 '무사안일'이라는 바다보다 더 무서운 녀석이 그들을 밀어넣은 것이지.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바다에서는 절대 교만해선 안된다는 기본적인 일을 잊은 댓가치고는 너무 많은 인생들이 죽음을 강요받은 상황이다. 아직까지 배가 무슨 일을 당한 것인지, 또한 왜 그리 빠른 속도로 전복되고 물속으로 잠겨갔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야 밝혀지게 되겠지만 진상을 밝힌다고 차디찬 바다에 던져진 생명들이 돌아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저 원통하고 또 원통할 뿐이다. 모쪼록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빈다, 또한 앞으로는 같은 이유로 생떼같은 생명들이 어이없이 사라지는 일이 없기를.
산책 Photo By Skyraider i-Phone 5 강동그린웨이 가족캠핑장 입구
Photo By Skyraider M/V CK ANGIE / 북대서양 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틀린 말을 하는가 보라. 여행은 안 돌아오는 것이다 첫여자도 첫키스도 첫슬픔도 모두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들은 안 돌아오는 여행을 간 것이다 얼마나 눈부신가 안 돌아오는 것들 다시는 안 돌아오는 한번 똑딱 한 그날의 부엉이 눈 속의 시계점처럼 돌아오지 않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다 그때는 몰랐다 안 돌아오는 첫밤, 첫서리 뿌린 날의 새벽 새떼그래서 슬픔과 분노의 흔들림이 뭉친 군단이 유리창을 터뜨리고 벗은 산등성을 휘돌며 눈발을 흩뿌리던 그것이 흔들리는 자의 빛줄기인 줄은 없었다. 그 이후론 책상도 의자도 걸어논 외투도 계단도 계단 구석에 세워둔 우산도 저녁 불빛을 단 차창도 여행을 가서 안 돌아오고 없었다. 없었다. 흔들림이 흔들리지 못하던 많은 날짜들을 스쳐서 그 날짜들의 어두운 경험과 홀로 여닫기던 말의 문마다 못을 치고 이제 여행을 떠나려 한다 흔들리지 못하던 나날들의 가슴에 금을 그으면 놀라워라. 그래도 한 곳이 찢어지며 시계점처럼 탱 탱 탱 피가 흐른다 보고 싶은 만큼, 부르고 싶은 만큼 걷고 걷고 또 걷고 싶은 만큼 흔들림의 큰 소리 넓은 땅 그곳으로 여행 가려는 나는 때로 가슴이 모자라 충돌의 어지러움과 대가지 못한 시간에 시달릴지라도 멍텅구리 빈 소리의 시계추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누가 여행을 돌라오는 것이라 자꾸 틀린 말을 하더라도 이진명 - 여행
초보 Photo By Skyraider 2013.04.16 춘천 운전만 초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도 모든 것에 서툰 이에게 웬지 반가운 글귀.
M/V CK ANGIE Photo By Skyraider Trombetas, Brazil 2011년 11월 태어나 그제까지 나와 함께 했던 CK ANGIE호. 떠나고 나니 갑작스레 그녀가 또 그리워진다.
Photo By Skyraider Atlantic Ocean 배의 짐칸은 생각보다 크다. 짐을 풀고나면 청소후에 사진처럼 안에서 축구 한 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조기축구회 회원으로 열혈활동 중인 타수 얀와르의 멋진 발리슛 모습.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인도네시아 국가대표에게 축구를 지는 일은 거의 없지만 이 날, 우리는 인도네시아 팀에게 한 골차로 아깝게 졌다.
Fog Photo By Skyraider 2012.11.01 La Place Anchorage, New Orleans, LA
Waterloo Station, Liverpool Photo By Skyraider Waterloo Station, Liverpool 획일적이고 현대화된 모습으로 찍어낸듯이 태어나는 여러 건축물로 채워지는 서울과 달리 세계를 돌다보면 이처럼 아날로그(?)적이고 순박한 모습으로 세월을 견디어내는 수많은 건축물들을 만나게 된다. 디자인 서울을 부르짖으며 동대문 운동장과 피맛골을 밀어버리고 세상에서 가장 몰개성적인 도시로 서울을 변모시킨 모 인사가 계속 생각나는군. 안필드부터 워털루역까지, 내게 리버풀은 마음에 안식을 주었던 즐거운 도시였다.
Trombetas, Brazil Photo By Skyraider 아마존강 중상류의 지류 Rio Trombetas에서.
로테르담에서 PHOTO BY SKYRAIDER 2012.09.22 ROTTERDAM, NETHERLAND 오늘 입항 중, 잊을 수 없는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도선사 승선시, 여섯 명의 인원이 본선에 오른다는 교신을 받고 처음엔 의아했다. 통상 도선사는 혼자 승선하거나 많아도 두, 세 명(그나마 하나 둘은 연수생)인 경우가 많은데 여섯이라니. 하여간 평소와 다른 내용을 듣고 향한 파일럿 스테이션에서 정말로 여섯명의 사람들이 본선에 올랐다. 그것도 넷은 여성에 한 명은 ENG카메라를 든 카메라맨. 알고보니 오늘 승선한 도선사 DE HAAS씨는 오늘 우리 배를 마지막으로 30여년의 도선사 생활을 은퇴하는 사람이었고 함께 승선한 네명의 여성은 그를 평생 내조해온 아내와 세 딸이었던 것. 그의 은퇴를 기념하고자 로테르담 항만은 항만 방송을 통해 그의 마지막 승선을 취재하였고 가족들은 본선의 선교에서 그의 마지막 도선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항만으로 들어가는 동안, 만났던 모든 선박들은 그의 30년을 우렁찬 기적소리로 축하해주었고 예인선들은 떼로 몰려나와 사진처럼 물을 뿌려대며 그의 마지막 길을 밝혀주었다. 본의아니게 기념의 한 복판에 놓인 우리 역시 그와 굳센 악수를 하며 그의 마지막을 본선에서 장식하게 된 것을 영광이라고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지. '은퇴'라는 것을 조금 더 무덤으로 가까이가는 것처럼 말하는 많은 이들에게 정말 많은 것을 보여준 날이었다, 오늘은..아니 어제는. 모쪼록 그와 그의 가족의 앞날에 늘 행복이 함께하기를 빈다.
Lazaro Cardenas, Mexico Photo By Skyraider 2012.07 Lazaro Cardenas, Mexico 남미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어딜가나 땅과 하늘을 집 삼아 떠도는 개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페루에서도, 브라질에서도, 에콰도르와 콜롬비아에서도 만난 녀석들을 멕시코에서도 만나다. 사람과 더불어 사는 개들, 그 사이로 지나던 시원한 바람 한 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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