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책이나 영화를 보고 울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아마도 슬픔이라는 감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몇해 전, 인터넷에서 우연하게 읽은 어느 편지 한장에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편지는 한국전쟁 당시 포항을 지키던 어느 학도병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쓴 것이었습니다.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와 절망감 속에서 그의 편지는 오히려 차분하고 담담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써내려간 글자와 단어와 문장의 사이에서 그가 느꼈을 감정은 수십년이라는 시간을 가로질러 저에게로 버겁게 밀려왔습니다. 편지의 말미에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니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의 문장에서 저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