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책이나 영화를 보고 울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아마도 슬픔이라는 감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몇해 전, 인터넷에서 우연하게 읽은 어느 편지 한장에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편지는 한국전쟁 당시 포항을 지키던 어느 학도병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쓴 것이었습니다.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와 절망감 속에서 그의 편지는 오히려 차분하고 담담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써내려간 글자와 단어와 문장의 사이에서 그가 느꼈을 감정은 수십년이라는 시간을 가로질러 저에게로 버겁게 밀려왔습니다. 편지의 말미에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니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의 문장에서 저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여담이고,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전 이 편지를 읽은 이후로 상추쌈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싱싱하고 쌉쌀한 상추쌈을 입 안 한가득 넣고 먹을 때면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생각나고, 그 편지의 주인공과 그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작년부터 부모님은 옥상에서 상추를 키우십니다. 이번 휴가 때 집에 내려갔을 때, 부모님이 정성껏 가꾸신 상추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날이 다르게 쑥쑥 자라는 상추를 흐뭇하게 보고 계신 부모님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아마도 그 학도병이 그렇게 살아서 보고 싶었던 풍경이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학도병이 쓴 편지를 덧붙입니다. 그 학도병 뿐만 아니라 무수한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시대적, 역사적, 정치적, 이념적 비극과 부조리는 잠시 한켠에 놓아두고, 그의 마지막 문장을 있는 그대로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1950년 8월 10일 목요일 쾌청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나는 4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나의 고막을 찢어 버렸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귓속에는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니,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겨우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빨아 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 내가 빨아 입은 내복을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壽衣(수의)를 생각해 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입히는 壽衣 말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되는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거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2014. 6 거창 digital
김현준
2014-06-19 1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