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찬장에붙은칼라사진한장

http://nfeel.co.kr/delicate 010-6397-7828 http://dongji.tistory.com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고, 울음에서 웃음까지 가는 길일 것이다.
2000.5.21 그리고 10년 - 16 <epilogue> 수하물 검사를 위해 대기줄에 서서 기다리던 중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카타르로 이동할 때는 분명 이런 소지품 검사실에 들어오기 전에 커다란 수하물은 이미 택을 붙여서 비행기 수하물 칸에 따로 실어 보내는 일을 했던 것 같은데 아테네에서 카타르로 이동하려는 지금 이 순간에는 제 손에 들린 이 커다란 수하물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뭐지? 뭐가 잘못된거지? 내가 뭘 빠트렸나?' 역시나 예상대로 검사를 수행하던 공항 직원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저희 부부를 위아래로 훝어 보기 시작합니다. 커다란 캐리어가 물품 검사 레일을 통과하자 엑스레이로 비춰 본듯한 모니터 화면에는 캐리어 안 물건들이 스캔이 되었고 공항 직원이 캐리어를 지퍼를 열고는 고압적인 말투로 매우 부정적인 말투의 단어들을 쏟아 냅니다. 캐리어 안쪽에는 이번 여행 전 아내가 큰 맘먹고 사준 고가의 스킨이 있었고 이러한 액체를 기내에 들고 탈 수 없는 규칙으로 인해 직원은 강한 어투로 무언가 계속 물어 봅니다. 이미 머리 속은 혼미한 상태로 멍한 채 서 있는 제 귀가에는 영어 단어가 맴돌고 있었고.. 대충 알아들은 몇단어로 추측해 보건대 이걸 가져가려면 따로 수하물 체크를 해서 비행기 수하물 칸에 실을 수 있도록 별도로 처리를 해야 한다며 다시 돌아가서 처리하고 오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제 탑승 시간이 20분 남짓.. 상당히 먼 거리를 걸어온 지라 직감적으로 다시 돌아가서 처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한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고가의 스킨은 포기해야만 하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아내가 저를 탓하는 원성의 눈빛과 감정이 가슴에 닿으며 한편으로는 대기시간 중 쇼핑을 하지 말고 나와 같이 준비를 제대로 했는지 체크 하지 않았던 아내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렇게 대기실로 이동한 저희는 당혹감과 허탈함에 심한 피로감이 몰려왔고 뒤늦게 이동한 대기실은 이미 여행객들로 가득차 빈 의자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미안한 감정이 더 컸던 저로서는 빈 자리를 찾아 여기 저기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찾지 못한 채 돌아와보니 아내는 맨 바닥에 널부러져 앉아 버렸습니다. 저도 지쳤던 지라 같이 바닥에 앉았고 아내는 화가 삭히지 않은지 같이 자리에 앉기 싫어하며 자리를 떴고 그렇게 옥신각신 하던중 마침 빈 자리가 나서 함께 앉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가 혹시 모를 또다른 실수가 있을까 두려워 준비된 티켓을 꺼내어 탑승 게이트에 있는 직원에게 이 티켓에 탑승 게이트가 이 곳이냐? 라고 물었습니다. 원했던 답보다 길게 대답해준 직원에게 간단한 감사 인사를 하고 이곳 게이트가 확실하다는 것을 아내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묵묵부답으로 그저 듣기만 하고 있는 아내에게 아쉬움을 토로하고 아침부터 있었던 사건들을 다시금 되새겨 보며 우리가 싸워서 결국 수하물 체크를 하지 못한게 가장 큰 문제였음을 인지하고는 아내에게 "내 실수다. 내가 느낌이 조금 이상해서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여권 검사하는 곳을 통과한 후에 수하물 보내는 곳이 나올 줄 알았는데 잘못 생각했나 보다." 라고.. 아내를 위로하며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방송으로 많이 듣던 이름이 흘러 나옵니다. 얼핏 아내와 제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지만 피로가 겹쳐있는 상태라 설마 우리를 부른거겠어 하는 심정으로 가만 앉아 있었습니다. 저희가 타고갈 탑승 게이트가 열렸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지쳐있던 저희는 제일 마지막에 타자고 마음 먹고 계속 앉아 있었고, 줄이 꽤나 줄어들 무렵 방송에서 다시 아까 들었던 저희의 이름이 나옵니다. 설마했던 마음이 우리 부르는건가? 하는 마음을 먹던 중 근처에 있던 다른 한국인 여행객이 "두분 부르는거 같은데요.." 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공항 직원이 저희에게 다가와서는 티켓을 보자고 합니다. 티켓을 보여주자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저희에게 서둘러 게이트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알고보니 전날밤에 인터넷 탑승 수속을 처리한 게 카타르 항공에서 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테네에서 카타르로 가는 수속 처리를 한 것이었고 게이트 왼쪽 입구로 남들보다 대기시간 없이 빨리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아무 생각없이 대기하고 있으니 미리 인터넷 수속을 밟고 나타나지 않는 저희를 방송으로 계속 찾았던 것입니다. 부리나케 게이트로 이동해서 티켓을 보여주고 들어가려고 하자 직원이 앞을 막습니다. 왼쪽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같은 통로인데 인터넷 탑승 수속은 왼쪽이라는 뜻인거 같았습니다. 이게 무슨 망신인지.. 대기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희를 바라보는 것만 같고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불행은 여기서 끝이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커다란 캐리어가 문제였습니다. 비행기 짐칸에는 도저히 실을 수 없을 부피에 크기가 문제가 되어 사람들 지나갈 통로를 막아서자 승무원이 다가와서는 조금 더 큰 짐칸이 있는지 다른 짐칸에 넣어보려고 하지만 역시나 큰 캐리어는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승무원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저를 입구쪽으로 나오라고 합니다. '설마 탑승못하게 하려는건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고 조종사까지 나와서는 한참을 대화합니다. 한 5분정도였던 시간 같은데 한 5년은 지난것처럼 등골이 오싹하고 얼굴에는 비오듯 땀이 쏟아져 내립니다. 승무원 중 한명이 어딘가로 무전을 치자 남자 승무원 한명이 와서는 저희 캐리어에 택을 달고 캐리어를 들고 갔습니다. 택에는 아테네와 경유지인 카타르 그리고 서울이 기록되어 있어서 수하물에 이동 경로를 표시한 듯 보였습니다. 택을 우두커니 바라보면서 앉아있으니 문득 캐리아 안에 있던 인쇄한 티켓이 떠올랐습니다. "헉, 티켓!" 아테네에서 부터 늘 챙겨 가지고 다니던 여권 가방으로 사용하던 작은 가방 속에 함께 넣어두었다가 필요하면 꺼내서 처리하던 여행 스케줄과 비행기 티켓이 아테네 -> 카타르 항공 티켓만 있고 카타르 -> 서울 티켓은 안보이는 것입니다. 한참을 모든 가방을 뒤져봐도 보이지 않았고 기억 속에 전날 아침에 있었던 사건들이 스쳐 갔습니다. 호텔에서 인쇄 문제로 골머리 썩이며 시간에 쫓겨서 인쇄한 인터넷 탑승 수속이 완료된 티켓을 그만 캐리어 가방 앞쪽에 여권과 같이 넣어 놨던 것입니다. 나중에 빼서 챙겨 두려고 했던 것을 모두 잊어 버린 채... 아내와 저는 동시에 마주보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하지? 고민 하다 일단 대화로 표현하기 위한 단어들을 빠르게 조합해서는 승무원과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승무원이 이해를 하긴 한 것으로 보였지만 이미 수하물 칸으로 내려간 캐리어를 다시 찾아보는건 불가능 하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어이없는 상황이 머리속을 가득 채운 상태에서 자리에 와 앉아서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볼 용기가 나질 않습니다. 고개를 앞으로 파묻고는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고개도 들지 않고 내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난 왜 이모양일까? 뭘 하나 준비를 해도 이렇게 허술할까? 잘하려고 하면 더 큰 사고를 칠까?' 별에별 생각들을 다 쏟아내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자 아내가 저의 이런 모습이 측은했던지 슬며시 팔짱을 낍니다. 눈물이 찔끔 나며 이런 못난 나를 위로해 주려는 아내가 고맙게 느껴지고 힘이 조금 나서는 기내식을 먹고 안정을 취했습니다. 몇시간이 더 흘러 카타르에 도착하자 저희는 발걸음을 빠르게 재촉하며 혹시 중간에 수하물이 이동하는 걸 확인해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으며 찾아보았지만 그런 방법은 없어 보였습니다. 정말이지 어이없고 무슨 불행이 이렇게 연속으로 터지나 싶을 정도로 황당하고 깊은 자괴감에 빠져 들어 버렸습니다. 카타르 공항 대기실 이곳 저곳을 수소문하며 티켓 분실.. 과 관련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고 안될 것 같던 티켓 재발급이 여러 단계를 거쳐 조회를 한 끝에 발급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한 탓인지 아내와 저는 카타르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덜어졌고 집에 도착해서는 겪었던 일들을 쏟아내며 즐거운 추억인지 괴로운 추억인지 알 수 없는 기묘한 감정들이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2년이 더 흘러 보니 역시 여행은 고생을 해야 짙은 추억이 되서 더 오랜 시간이 흘러도 다시 꺼내서 볼 때 할 말이 많아집니다. 당시에는 힘들고 괴로웠어도 지금은 행복한 기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the end -
2000.5.21 그리고 10년 - 15 <갈등과 불씨> 아침 일찍 호텔 조식을 먹은 후 아내는 아테네에서 보낸 시간들이 많지 않다는데 아쉬움이 컸던지 지도를 펼쳐놓고는 호텔을 중심으로 가보지 못한 지역들을 가리키며 가보자고 합니다. 전날에도 쌓인 피로 때문에 일찍 쓰러진터라 아침이라고 별반 다를 수 없는 상황에 다른 곳을 더 봐야 한다는게 너무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여행 가이드 차원에 가져간 책자에서 추천한 아테네 외곽 지역에 항구 근처 도시를 가보자고 합니다. 아내가 추천한 곳은 공항과는 거의 반대방향에 위치한 곳으로 전철로만 이동할 수 있는 저희로서는 결국 그 지역을 가기 위해서는 호텔을 중심으로 다시 호텔로 돌어와서 공항으로 가야하는 방법 뿐이었습니다. 공항에는 항상 2시간 정도 여유를 두고 도착해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지라 저는 공항 쪽 방향에 위치한 관광지를 가는게 좋겠다고 추천하였지만 아내는 아내가 추천한 곳을 갔다 오더라도 시간상 충분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지도상 거리를 보니 약 10km 이상의 거리를 두고 위치한 탓에 저는 10km면 상당한 거리이고 교통난이다 여러가지 상황으로 봐서 너무 무모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그러다 탑승 시간에 제 때 도착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의견들을 내놓으며 쓸데없이 과한 논쟁까지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고성이 오가며 여행 전체가 후회될 말들을 쏟아내며 흥분을 거듭하다 결국엔 아내의 주장대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호텔에 짐을 맡겨두고 지하철로 이동해서는 공항과 반대방향의 항구 도시로 이동하였고 여전히 아내와 저는 논쟁에서 비롯된 앙금이 그대로 남아있던 지라 표정이 좋을리가 없었습니다. 사진 속 아내의 얼굴에 잔뜩 그늘이 져있습니다. 그렇게 딴청 피우듯 취하는 자세에 화가 난 제가 제촉하듯 아내와 멀찌감치 떨어져 걸었고 큰 항구에 들어서서는 서로의 행방을 잊은 채 찾아 헤메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늘 그랬듯이 이런 시간낭비는 쓸모없는 소모전에 불과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아내를 찾아서는 장난기를 부립니다. 아내도 충분히 상황을 알기 때문에 이내 얼굴을 피고는 남은 시간을 즐기고 머리에 담기 위해서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보는데 투자하였습니다. 마음을 고쳐 먹으니 의외로 남은 시간이 촉박한 것은 둘째치고 낯선 도시에서 느끼는 비슷한 풍경들에 재미가 붙었습니다. 과일, 생선, 잡화 등등 많이 보던 한국의 시장과 유사한 모습의 시장도 보고 시내 버스도 타고 호텔과 조금 떨어진 거리에 내려서는 호텔까지 걸어서 가는 열정까지 발휘하며 많은 것들을 더 보고 즐겼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싸웠던 감정선이 쉽게 지워지긴 어려웠나 봅니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겨 들고 공항으로 향하기 위해 호텔을 나서다가 문득 전날밤 인터넷 수속 처리를 하며 처리된 내용 중 카타르 공항에서 사용할 티켓을(인터넷 수속 절차가 끝났다는) 인쇄해야 한다는걸 잊고 있었다는게 생각이 났습니다. 저희는 다시 호텔로 들어가 지배인에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카타르 항공사에 접속해서는 어제 처리한 내용들을 조회한 후 인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카타르 홈페이지 내용을 그리스 컴퓨터에서 인쇄하니 글자들이 모두 깨져버리는 것입니다. 이 상황을 도무지 어떻게 할지를 몰라 이것저것 설정들을 고치고 해도 쉽게 맞지 않습니다. 몇번에 실패로 패닉 상태가 되어가고 이동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마음이 불안해지니 다시 감정이 조절하기 어려워집니다. 결국 수차례 실패에 마지막 방법으로 화면을 캡춰해서 그림판에 옮기고 인쇄하니 훌륭하진 않지만 나쁘지 않은 정도의 품질로 인쇄가 가능했습니다. 지배인에게 감사를 표하고 여권이 들어가 있는 캐리어 앞 칸에 같이 넣어두고는 공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아테네 공항에 도착하자 안도감이 몰려오면서 아침부터 쏟은 수많은 스트레스로 인해 지쳐서 그냥 의자에 앉아서 마냥 쉬고만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공항 내 상점들을 둘러보길 원했고 내가 재촉한 시간만큼 남은 시간이 아깝지 않냐는 논리로 함께 쇼핑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짜증을 냈고 결국 아내는 혼자서 쇼핑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꽤나 시간이 흘러 어느덧 보딩타임이 되었고, 아내를 찾아서는 이제 30분 남았으니 들어가야 한다고 하고는 아내를 재촉했습니다. 한참을 이동하자 탑승대기실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수하물 검사며 소지품 검사를 위한 대기열에 줄을 서게 되었고 사건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000.5.21 그리고 10년 - 14 <엽서보내기와 고난의 시초> 산토리니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습니다. 아침 일찍 호텔 객실을 비워줘야 할 시간 이전에 짐을 모두 정리한 저희는 산토리니 공항으로 이동하기 전 아쉬운 마음에 호텔 프론트에 짐을 맡기고 시내로 이동하였습니다. 차를 타고 이동했을 때는 몰랐던 도로 주변 경관도 지중해의 푸른 바다와 하늘색이 더욱 짙게 느껴졌습니다. 전날 이아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이것 저것 사둔 기념품들 중 엽서를 아이들에게 보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어머님께 맡기고 우리 부부 둘만 온 여행이라 미안하고 걱정도 많이 되고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곳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는게 아쉽고 안타까워서 여행을 마친 후에 다음 여행 계획은 가족 여행 계획으로 세워두었습니다. 정확한 일정은 미정이지만 조금은 덜 막연하게나마 약 5년후로 예정하고 여행지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산토리니의 우체국은 현대식이어서 부담감이 덜했습니다. 저희들 말고도 많은 관광객들이 엽서와 우편물을 보내기 위해서 이용중이었습니다. 엽서 2장에 큰딸과 작은딸에게 각각 1장씩 내용은 아내가 먼저 채우고 제가 나머지를 마저 채우는 식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엽서를 보내기 위해 보낼 지역을 말하고 우표를 구입해서 붙이고하는 일련의 방식이 한국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아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약간의 의사 소통 문제가 있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습니다. 받을 곳은 아이들의 학교로 하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그리스 산토리니의 풍경이 담긴 엽서를 아이들에게 건네주는 모습을 상상하며 저희 아이들이 부러움을 한껏 받을 생각을 하니 뿌듯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상은 상상으로만 그쳤습니다. 저희가 한국에 돌아오는 시간보다 훨씬 더 늦게 도착할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고 늦어야 하루 이틀 정도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몇일을 더 기다렸지만 아이들이 옆서를 받았다는 얘기를 몇일이 지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서프라이즈가 언제쯤 일어날지 기대하는 것도 서서히 잊혀질 무렵 아이들이 엽서를 받았습니다. 예상과 달리 아이들의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아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엽서를 주었고 아이들은 이미 부모들이 돌아와 몇일을 함께 지난 이후여서인지 이렇다할 감흥도 없고 부러움도 없는 밋밋한 서프라이즈가 되버렸습니다. 해외 여행 중 옆서는 도착하자 마자 보내는게 좋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린 항공우편은 장기 여행이 아니고서는 기대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그렇게 엽서를 보내는데 성공한 저희는 이후 남은 시간의 여정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의견 차이로 갈등을 빚었습니다. 아내는 좀 더 둘러보자는 의견이었고 저는 일단 산토리니 공항으로 이동할 버스를 알아봐야 할 것 같고 너무 늦어지면 호텔로 돌아가서 짐을 찾아 오는데 걸리는 시간까지 예기치 않을 일이 일어나 일정의 혼선을 가져올 수 있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먼저 짐을 찾아와서 버스 시간이나 노선을 알아보자고 하였습니다. 아내는 얼마 걸리지 않을 거리인데 굳이 그렇게 까지 해야 하느냐는 논리였지만 결국 제 고집으로 호텔로 이동해 짐을 찾고 무거운 짐을 질질 끌며 버스 터미널로 이동했습니다. 사소한 말다툼이 있은 후라 아내와 저는 멀찌감치 서로 떨어져 이동을 했고 아내는 혼자 터미널 주변 다른 곳으로 자취를 감췄습니다. 버스 노선 확인을 하고는 아내의 동선을 살펴 확인한 후 아내에게 버스 정보를 말해주면서 은근 슬쩍 얼버무리고는 버스 출발 시간에 맞춰 탑승하고 공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리스의 처음 도착했을 때 묵었던 호텔로 다시 돌아왔고 이래 저래 몸도 마음도 피곤한 탓에 호텔에서 밖을 나가 보는게 별로 탐탁치 않았습니다. 마지막 밤과 다음날 돌아갈 비행 준비를 위해 그리스로 올 때의 실수를 만회하는 차원에서 경유지인 카타르 공항에서 대기시간을 단축하는 인터넷 수속을 다시 한번 시도해서 성공하고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제 그리스에서 하루는 다음 날 하루만을 남겨둔 채 호텔의 밤은 저물어 갑니다.
2000.5.21 그리고 10년 - 13 <후회없는 선택> 산토리니에서의 마지막이 조금씩 줄어들어갈 무렵 조바심이 나기 시작합니다. 산토리니의 마지막 일정으로 이아마을에서 보는 일몰을 계획했던 상황이라 혹여라도 놓친 것은 없는지 다시 한번 되새김질 해보던 중 이아마을 부근 절벽 아래로 길게 이어진 길이 보입니다. 길을 따라 시선을 쫓아가니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유람선을 타고 온 여행객들이 항구에 정착한 후 길을 따라 마을로 접어드는 통로입니다. 통로를 따라 사람과 당나귀들이 뒤섞여 가며 당나귀를 탄 여행객들이 짐을 당나귀 등에 가득 실어 놓고는 느긋하게 언덕을 오르는 모습이 여간 탐이나는게 아닙니다. 여기를 가보질 않으면 후회가 될 것 같아 아내를 이끌며 재촉합니다. 마을 골목 양쪽으로 수많은 상가 쇼윈도우에서 눈길을 못떼는 아내는 수시로 가는 내내 이곳 저곳 상점에서 상품을 구경합니다. 기념품을 하나 사더라도 수십군데를 들러 같은 상품을 비교해보고 얼마 차이 나지 않은 가격들에도 조금 더 싸고 질좋은 상품을 찾으려고 발길을 멈추어 버립니다. 이래 저래 십여개의 상점들을 더 들러 도착한 곳은 여행객들을 등에 실어 나르는 당나귀가 도착하는 목적지 부근입니다. 산토리니 현지인들로 보이는 주민들이 당나귀를 타고 관광을 유도하는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걸로 보이는 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고는 출구 부근을 살피다가 문득 저 곳은 지나기만 해도 돈을 지불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 근처까지 오는 것은 제가 주장하긴 했지만서도 절벽 아래까지 내려가 보는 것은 내키지 않았습니다. 일몰을 볼 수 있는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는 무리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안된다고 하였고 아내도 처음에는 절벽 아래로 내려가고 싶어하던 마음을 금방 접었습니다. - 여행을 다녀와서는 내내 머리속에서 그려지지 않는 풍경 하나가 있습니다. 절벽길을 따라 내려가며 볼 수 있는 풍경과 항구에서 바라보는 마을 언덕의 풍경들.. 보지 않았으니 그려지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여행이 모두 끝난 후 후회하지 않으려면 볼려고 마음 먹은 것은 보는게 좋습니다. - 그렇게 근처에서 어슬렁 거리며 발길을 돌리려니 아쉬움이 한가득입니다. 현지인들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몇장을 찍고는 기념에 남기려고 어르신 한분에게 어눌한 영어로 사진.. 여기 손짓 발짓.. 아내와 with.. 촬칵... ok? 하니 손을 길게 내밀며 이리 오라는 시늉을 합니다. 아내가 재빨리 다가가 어르신의 팔짱을 끼고는 환하게 웃습니다. 고마움을 표하고는 서둘로 걸어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 일몰이 잘 보인다는 이아마을 끝으로 이동하였고, 날이 저물어 더 거세고 차갑게 불어대는 바람을 온몸으로 견디며 기다림의 끝에 맞이한 일몰은 한국에서 보던 그것과는 기대 이하의 모습이었습니다. 관광으로 지칠대로 지치고 허기진 상태라 돌아오는 길에 들른 이아마을 식당에서 먹은 그리스 음식은 꽤나 맛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산토리니의 마지막 밤이 저물어 갑니다.
2000.5.21 그리고 10년 - 12 <내 사진과 취미>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결혼10주년과 더불어 아내의 모습을 아름답고 멋지게 남겨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게 오직 아내만을 찍을것이고 내 사진은 찍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 먹었습니다. 마음 먹은대로 거의 대부분 실행에 옮겼고 제 사진은 전체 사진 중 3~4 장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산토리니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뒤로하고 내 모습을 담는거 욕심이 날만한 일이었지만 그 조차도 불필요한 시간낭비이며 아내를 힘들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애초에 삼각대는 챙기지도 않았고 그리스 여행중 함께 나온 사진은 2장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애석한 일일 수도 있고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 사실 사진이 좋아진건 20년전 대학 시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대학을 입학하기 전까지 전 문학을 꿈꾸던 문학소년이었습니다. 고교시절 부터 시와 수필을 쓰는걸 좋아했고 그래서인지 국어 과목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물론 국어 성적도 그만큼 좋았었습니다. 하지만, 꿈을 현실로 옮기는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결국 학과는 앞으로 취업 전망이 가장 좋다는 전산을 선택했고 대학 입학 후에도 전공과 꿈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PC통신 문학 동아리를 조직하고 상당히 큰 조직으로 키워냈습니다. 그런 와중에 대학생활에서도 문학과 관련있는 교지편집국에 들어가게 되었고 3학년이 되던 무렵에 취재부장이라는 직함을 달게 되었습니다. - 편집국 선배들의 반강제적 협박으로 제가 과내 여학생을 물색하던 중 아내를 설득하여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와는 이를 계기로 점차 가까워졌고 이후 CC로 발전해 10여년의 길고 긴 연애 끝에 결혼하게 됩니다. - 취재부장이 되던 그 해에 아내는 선배들의 졸업과 더불어 편집국장이 되었고, 취재 차 카메라를 사용해야 할 일이 많이 생겨 아내와 저는 자주 함께 취재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다룰 일이 많이 생겼고 많은 사진을 찍고 좋은 사진을 골라 책에 실어야 하는 일을 해야 하다보니 사진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던 그 해 IMF가 터졌습니다. 취업이 정말 어렵던 시기에 몇달을 백수로 지내던 제게 그동안 제가 꿈꾸고 해왔던 모든 일들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딱 맞는 일자리가 생겼습니다. '한국시문화회관' 이라는 곳에서 월간지를 만들고 취재활동도 하고 사진도 다루며 기사도 쓰고 작가들과의 교류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직장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생활은 IMF라는 사회적 환경이 가져다준 상황으로 인해 과중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첫달부터 밀리는 월급에도 큰 불만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 당시 근무 일과를 재미삼아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7시 출근 ~ 11시 퇴근, 토요일 8시 출근 ~ 10시 퇴근, 일요일 격주 근무.. 격주 근무하는 쉬는 일요일에는 자작시나 자작수필을 써서 산행을 가서 낭독 - 그렇게 수개월을 있으면서 좋아하는 일만으로는 생활을 채우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끝내 제가 좋아하는 일은 현실 앞에서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고 새롭게 선택한 직업은 전공을 살려 IT 계열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렇게 10여년간 직장생활, 창업, 다시 직장.. 이런 과정을 거쳐 오면서 좋아하던 것과 하고 싶어하는 것은 조금씩 멀어져만 갔습니다. 2006년 겨울 무렵 전국민의 DSLR 취미를 발판삼아 지금의 카메라를 구입하게 되었고 잊고 지냈던 사진에 대한 열망이 조금씩 다시 살아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길게 적은 이유에는 고단한 생활로 인해 점차 잃어만 가는 또는 잊고 지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짙은 후회가 밀려와서 이고 또한 아쉬워서 입니다. 아내는 카메라나 사진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아내나 아이들을 모델삼아 사진을 찍고 사진을 골라 이야기를 담아 내는 일련의 과정이 지난 후에 결과물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감동을 받거나 재밌어 하거나 합니다. 이렇게라도 관심을 가져주는 아내가 사실 무척 고맙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조금은 더 욕심이 있는건 사실입니다. 아내는 사실 이렇다할 취미가 없습니다. 물론 살림하랴 아이들 교육 챙기랴 일하러 다니랴 무척이나 바쁜 와중에 활동적인 취미를 갖는건 쉽지 않은 선택일 겁니다. 그래서인지 집안에서나 할 수 있는 한지공예나 천공예 같은 취미를 간간히 합니다. 이 조차도 최근엔 다른 일들에 치이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소원해 진 것 같습니다. 아내가 저와 함께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하면 좋겠다는게 제 욕심입니다. 사진을 찍고 같이 토론하고 이러한 공동의 취미생활을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아내를 찍은 사진 속의 아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왠지 모를 짜릿함이 몰려옵니다. ---- 어찌하다보니 이야기가 많이 옆길로 샜습니다. 잠시 지쳐 쉬고 있는 내 모습을 문득 사진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한장 찍어 달라고 했고 아내가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는 힘겹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진입니다.
2000.5.21 그리고 10년 - 11 <노력의 결과> 여행에서 남길 것은 추억과 사진이라고.. 아름답고 멋진 풍경들을 눈과 카메라에 담아가며 일분 일초가 아까울 정도로 보고 또 보고 혹시 놓치고 빠트린건 없을까 싶은 조바심에 발바닥이 불이 나도록 돌아 다녀도 그만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산토리니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이드 책 한권과 그리스 섬을 주제로한 여행 수필집 한권을 샀는데 여행 수필집 제목이 "야사스! 그리스" 라는 책이었습니다. 수필집에 소개된 수많은 이야기들을 꿈꾸며 이제 곧 우리도 그곳에 있게 되겠구나.. 라는 마음으로 책 속 내용과 저자가 갔던 장소 마음에 쏙 드는 풍경들 하나 하나를 곱씹어 보았습니다. 물론 여행지 내내 책을 다시 들춰보며 '아 여기가 이곳이구나..' 감상에 잠기며 산토리니 정취에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책 속에 소개된 사진이 한장 있었습니다. 산토리니의 정취를 한번에 표현하고 지중해의 넓은 바다와 절벽에 지은 수많은 아름다운 하얀색 집들이 모두 담겨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아내에게 "이 책속에 장소가 어디일까? 정말 딱 이 포인트에서 사진 한장 찍고 싶은데..." 그렇게 그 장소를 찾으려고 왔던 곳을 다시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를 서너차례 날은 서서히 저물기 시작하는데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분명 여기 피라마을이 확실한데 저 푸른색 지붕 3개가 나란히 보일 수 있는 위치가 나오질 않는 것입니다. 착오가 있거나 이아 마을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 '아 이렇게 결국 이 장소를 못가는건가?' 하는 좌절감과 함께 마지막 희망으로 옆서를 파는 상점 주인들에게 물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책속 사진을 보여주면서 "사진 속 장소를 가서 촬영을 하고 싶다." 라고 물었고 대부분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오던 중 한 상점에서 희망찬 답을 들었습니다. 짧은 영어로 "여길 안다. 하지만 찾기 쉽지 않다. 또 촬영하려면 매우 어려운 자세(?)나 위치(?)에 자리 잡아야 한다." 정도로 들었고 대략적인 위치를 안내받았습니다. 그렇게 안내한 장소로 다시 이동했지만 분명 조금전 지나쳤던 곳이고 이곳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런 곳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파란 지붕은 2개 뿐인데.. 라고 생각하며 조금더 깊이 들어가 보려고 계단을 내려갔고 계단 옆으로 즐비한 집들 너머에 작은길 하나가 보였습니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몇개의 집들을 월담을 해야만 했습니다. - 사실 산토리니 절벽에 있는 집들 중 대부분은 빈집이 많습니다. 관광지이다 보니 실제 숙박용으로 운영되는 집이 있는 반면 아름다운 경관을 유지하기 위해 수시로 국가에서 흰색 페인트와 파란색 페인트로 칠을 해 유지시켜주는 빈집들도 있습니다. - 저희가 월담에 넘어간 집들은 빈집들이었습니다. 대체로 외부로 다 공개된 마당이나 지붕과 연결된 듯 작은 옥상(마치 우리 나라에 장독대같은)을 지나 그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 길에서 등뒤로 돌아 보는 순간 '아 이곳이구나...' 정말 어렵다고 했던 말을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사진속 장면과 유사한 화각과 구도를 만들려면 뒤로 더 이동을 해야 했고 다른 집들로 막혀있는 공간이라 더이상 이동이 어려웠습니다. 결국 다시 월담을 해서 남의 집 위에서 언급한 좁은 옥상으로 올라가서는 엎드려서야 겨우 그 화각과 구도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렌즈의 더 넓은 화각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 이렇게 어려운 포즈를 잡았을까 싶은 의아함이 살짝 들었습니다. 이미 날이 상당히 저물어 가던 시점에 찾아서 더 아쉽고 그래서 이 곳에서 촬영한 사진 장수만 100여장이 넘을 것 같습니다. 마음과 달리 마음에 쏙 드는 사진이 나오질 않아서 안타까웠고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가져간 책을 들게하고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 알게된 사실 중 포카리스웨트를 촬영한 장소가 산토리니에서만 찍은게 아니라 산토리니, 미코노스, 제주도 우도 서빈백사 등에서 나눠서 촬영한 것을 편집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쉽게 보아오던 아름다운 장면들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닌 수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빚어진 결과물입니다.
2000.5.21 그리고 10년 - 10 <계획과 실수 그리고 아내가 좋아하는 사진> 아침 일찍 호텔 조식을 챙겨먹고 하루 여행 일정을 계획하면서 가급적 하루 안에 산토리니의 많은 곳을 다니기 위해서 방문 순서를 정하고 출발하였습니다. 전날 대충 본 피라마을은 중심부에서 약간 북쪽이고 이아마을은 북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어 나머지 몇몇 방문할 곳들이 동남쪽과 서남쪽 방면에 있다보니 가장 마지막에 피라마을과 이아마을을 방문하기로 하고 동남쪽으로 돌아 서남쪽을 거쳐 북서쪽으로 올라가는 방향으로 정하였습니다. 먼저 찾아 가기로 한 곳은 붉은색 절벽으로 유명하다는 레드비치를 가기로 하고 차를 탔습니다. 지도상으로 본 경로는 큰길 위주로 이동하다가 해안가로 난 길로 한뱡향으로만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허허벌판이 연속적으로 펼쳐지고 한참을 달리다보니 서서히 샛길들이 보이고 푯말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OOO Beach.. 등등의 해안들을 표시하는 푯말들이었지만 우리가 가고자 했던 해변은 아니었습니다. 또다시 불길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자 급히 차를 세우고는 문뜩 잊었던 생각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한국에서 그리스로 떠나기전 렌트카 예약시에 네비게이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아이폰 용 그리스 지도가 담긴 네비게이션 어플을 미리 받아두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사용하지 못했던 이유는 한국에서도 도무지 그리스말로된 사용법을 알 수가 없어 목적지를 어떻게 설정을 해서 찾아야 하는지를 알아내지 못했던게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위기 상황을 미리 대처했다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아이폰을 꺼내어 네비게이션을 실행하며 "아이폰 사길 잘했지? 이게 바로 그리스 지도가 있는 네비게이션 프로그램이야.." 한동안 그렇게 꼼지락 꼼지락 되면서 "음.. 이게 왜 모의주행만 되고.. 실제 경로탐색은 어떻게 하는거지?".. 역시나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방법을 알아내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뭘 누른건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비슷하게 경로탐색을 할 것 같은 화면이 나오고 현재 위치가 잡힌듯 했습니다. 한 20~30분간을 그렇게 지체하다가 "으흐흐흐 이제 된다. 캬.. 봐.. 되자나.. 역시 아이폰이야!!" - 아이폰을 자꾸 강조했던 이유는 국내 출시한지 얼마되지도 않았을 무렵 아내에게 동정 모드로 돌입하여 어렵게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 그렇게 출발한 차는 한참을 안내해주는대로 따라가며 해안가 근처에 다다르는 듯 해 보였습니다. '드디어 제대로 찾아가는구나..' 라는 희망찬 생각을 가지고 여유있게 풍경을 즐기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광에 사진을 담기 시작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세계 각지에서 온 듯한 여행객들을 만나며 반가운 마음을 한껏 뽐내고는 여행의 향취에 빠져서 목적지로 이동하였습니다. 눈으로 보는 목적지는 분명 왼쪽으로 가야 하는데 네비게이션은 오른쪽으로 안내 합니다.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안내하는 동안 이렇다할 이상한 점 없이 길을 잘 안내해 주었다고 믿었던지라 믿고 안내하는대로 한참을 더 갔습니다. 해변이면 밑으로 조금씩 내려가야 하는게 맞을텐데.. 이상하게 길은 갈수록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처음에 넓었던 길은 어느새 점점 좁아지고 마치 서울 달동네라도 올라온 것 같은 마을에 당도하였습니다. 더이상 앞으로 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판단하에 일단 차를 주택가에 세워두고는 내려서 찾아보기로 합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집들뿐이고 조금 더 올라가자 동네 아이로 보이는 소녀가 대문 창살안에서 저희를 보고 있습니다. 반가워 가까이 가려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커다란 사냥개 한마리가 저희를 향해 쫓아왔고 혼비백산한 아내와 저는 차를 행해 달렸습니다. 차에 타서도 열기를 식히려고 조금 열어둔 창문으로 사납게 뛰어 듭니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아내가 창문을 올리려 수동식 레버를 열심히 돌려 닫고는 개가 조금 멀어진 틈을 타 차를 급히 후진해서 내려왔습니다. 진땀나는 짧은 순간을 지나 내려와 큰길로 접어 들어서는 이미 레드비치는 안중에도 없었고 지나가는 여행객들 차를 쫓아 가기로 하였습니다. 한참을 구불구불 길을 지나서 도착한 곳은 더이상 갈 곳 없는 길이었고 어딘지 이름도 모르는 해안 절벽 끝에서 사진 몇장을 찍고 원래 계획했던 곳은 더 가지 않기로 하고 피라 마을로 가기 위해 다시 숙소인 호텔로 향했습니다. 허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계획하지 않은 이름 모를 곳들을 가본 것도 나름 좋은 여행이었으리라 생각하며 숙소에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는 다시 피라마을로 이동했습니다. 가기전에도 미리 조사한 바로는 산토리니는 피라마을과 이아마을만 보면 거의 다 본거고 2일 정도면 더 볼게 없다는 말을 들었던지라 어쩌면 그다지 후회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여러 곳을 예기치 않게 돌아보고 다녔던 저희로서는 피라와 이아 두곳만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다시 간 피라 마을에서 첫날 가지 않았던 경로와 좀 더 구석구석 골목골목 그리고 파랑색 지붕이 아름다운 광고에서 늘 보던 그곳을 찾아 헤메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늘 수동적으로 제가 찍어주겠다고 하는 곳이 아닌 스스로 찍히고 싶어하는 장소를 찾아서는 "나 이곳에서 찍어줘" 라고 하였습니다. 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큰 사진으로 보았을 때 너무나 마음에 들어하는 사진으로 지금 이 사진을 주저없이 꼽았습니다. 하지만 작게 인화할려고 보니 아내가 잘 보이질 않습니다. 가끔 이 사진을 다시 보고 싶어 찾아보려고 하면 썸네일만 보고서 찾는게 무척이나 힘든 사진입니다.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사진을 올려 봅니다.
2000.5.21 그리고 10년 - 9 <지중해... 바람> 첫번째 목적지로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피라마을을 가기로 합니다. 이미 시간은 오후로 들어서는 길목인지라 많은 곳들 돌아다니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습니다. 차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피라마을은 광고에서 많이들 보아왔던 파랑색 지붕들과 흰색 집들이 벼랑같은 언덕에 빼곡히 들어서 있는 곳입니다. 여전히 일방통행에 적응되지 않아 가는 방향과 오는 방향을 헤깔려하며 도착한 피라마을 입구에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해두고 그토록 꿈에 그리던 산토리니의 상징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길거리에 즐비한 기념품 상점들을 돌아올 때 자세히 보자고 하고는 대충 훑어서 가길 30분 정도 지나자 탁 트인 넓은 지중해 바다와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옹기종기 모여있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장관인 하얀색 언덕 집들을 눈에 담는 순간 몇일간 고생하며 속상하던 마음속 응어리가 일순간에 씻겨 내려갔습니다. 차마 모든걸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장면은 평생 한번 볼까말까한 장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는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이고 굳이 표현하자면 어안렌즈로 찍은 사진을 가끔 보면 참 시원하다.. 로 느끼는 감동에 수백배는 달할거라고 장담합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색 바다와 푸른 하늘의 잊지못할 장면들을 모두 보여줄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푸른색 흰색과 더불어 잊지못할 기억 하나가 바람입니다. 지중해 바람은 탁 트인 해안 언덕 위로 막힘없이 불어재꼈습니다. 아내가 쓴 모자는 너무도 쉽게 날려 버렸고 이내 모자와 치마를 부여잡는데 신경을 바짝 써야할 정도로 바람은 끊임없이 줄기차게 그리고 세차게 불었습니다. 피라마을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를 보면 중간 중간 지나가거나 정박해 있는 커다른 유람선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크기도 장관이지만 파란색 바다와 아주 잘 어울리는 색상의 배들이 참으로 멋집니다. 다음날 오전 호텔에서 만난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에게 들은 얘기로 바람이 너무 심해서 예정과 달리 하루를 더 배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마음 속으로 비행기로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며 우리가 고생한 고생들보다 그냥 하루 까먹은 분들에 비하니 위안(?)이 되었습니다. 흘러가는 시간에 비해 구경할 것들이 너무 많은 탓에 우선 눈에 슬쩍슬쩍 담는 정도로 피라 마을 상가들을 구경하고 멋진 길거리 음식점에서 실수 없는 음식 주문까지 더불어 즐기며 산토리니 하루를 멋지게 보냈습니다. 아내의 얼굴에 핀 행복 가득한 미소가 담긴 사진들을 찍어가며 저 스스로도 뿌듯하고 이번 여행을 계획한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2000.5.21 그리고 10년 - 8 <산토리니 숙소안.. 너무도 밝은 아내> 아침일찍 호텔에서 주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테네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잠을 좀 설친대다가 늦게 일어나면 아침 식사부터 모든 일정이 헝클어질게 뻔해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서인지 몸과 마음이 허둥대고 복잡했습니다. 다행히도 미리 계획된 여행사 스케줄 표대로 잊지 않고 기억해야할 것들을 빠짐없이 따라가려고 애쓴 탓에 무사히 산토리니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문제는 공항을 빠져나오면서 부터 미리 예약해둔 렌트카를 렌트한 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렌트하는 과정은 그렇게까지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내의 조금 더 긴 영어탓에 그럭저럭 큰 불편없이 렌트에 성공하였고 업자가 건네준 지도 속 숙소까지도 큰 길을 따라 쭉 가다가 교회를 만나면 좌회전을 하고 길을 돌아 조금만 더 가다 길가에 숙소를 찾을 수 있는 간단한 설명까지도 아주 잘(?) 이해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자신만만하게 차를 운전해서 이동하였고 안내한대로 큰길을 따라 수 km 를(업자가 말해준 거리) 지나면서 곧 나와야 할 교회가 보이지 않자 서서히 불안함이 엄습해 옵니다. 태연하게 운전대를 잡은 저로서는 아내를 안심시키고 '나만 믿어' 라는 눈빛을 보내며 하염없이 더 달렸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더 가다보니 안내해준 것과 비슷한 갈래길을 만나게 되었고 교회는 무심코 지나쳤으리라 판단하여 과감하게 방향을 바꾸어 들어갔습니다. 많은 푸른색 숙소들이 지나쳐 가는 것을 보아 이곳이 확실하네.. 이 근처일거야.. 라며 스스로에게 안심 시키고 열심히 예약된 숙소 이름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들어가도 비슷한 이름의 숙소도 안나오고 길은 이상하게 자꾸만 위로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한참을 더 올라가다 더이상은 이길이 아니리라 결심하고 돌아가려 내려가는 길 쪽으로 방향을 바꿔 내려가는 순간 마주에서 오는 버스와 자가용들이 연신 저희 차를 향해 클락숀을 울려대기 시작합니다. 이유를 몰라 허둥대는 저희에게 버스 운전사가 창밖으로 손짓을 하며 알 수 없는 말로 소리를 치는 순간 '아 일방통행이구나...' 사람이 당황하게 되면 안하던 실수도 더 심하게 하게 되는데 그렇게 길을 돌아 가던 중 오르막 길에 접어들자 밀려있는 차들 뒤에 같이 서게 되었고 우리가 빌린 차가 2,000cc도 채 되지 않는 경차라는 것을 깜빡 잊은채로 별 생각없이 브레이크도 밟지 않고 모든 발을 떼었습니다. (보통 2,000cc 이상의 차에서는 발을 모두 떼어도 D 모드에선 기본적으로 앞으로 가려는 힘으로 오르막에서도 왠만해선 밀리지 않고 위로 오릅니다) 차가 뒤로 밀리기 시작하자 뒤에서 오던 차들이 클락숀을 울리기 시작하고.. 머리 속은 순간 공황 상태로 접어들어 눈앞이 하얀세상이 되버렸습니다. 부리나케 브레이크를 잡았으나 속으론 '뭐지? 도대체 뭐가 문제지?' 이해가 안되는 상황에 다시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어 보았으나 여전히 뒤로 밀리자 다시 브레이크를 잡고는 갑자기 20년전 운전면허 시험을 보던 과거의 자아로 돌아가버렸습니다. 반클러치가 아닌 반브레이크를 잡고는 순간적으로 엑셀을 밟아 오르막을 올라갔습니다. 엑셀 밟는 순간 지나치게 긴장한 탓에 심하게 엑셀을 밟았고 부~앙 하는 굉음을 내었습니다. 오르막을 지나 평지가 오자 잠시 길가에 세웠습니다. 아내는 사색이 된 얼굴로 저를 심하게 나무랐고.. 저는 이래저래 변명하기에 바빠졌습니다. 난감한 상황을 대충 회피하려고 얼렁 뚱땅 무마하고 다시 차를 몰았고 아내는 여전히 불안한 얼굴과 심란한 표정으로 조용해 졌습니다. 몇차례 비슷한 길들을 돌아돌아 결국 왔던 길을 다시 찾아냈고 차근차근 돌아가며 가던 중 의외의 장소에서 그렇게 찾던 숙소 이름과 같은 곳을 찾았습니다. 나중에 여러 지도들을 꺼내보고 문제가 뭐였는지를 찾아보니 한국에서 안내해준 지도와 현지에서 받아든 지도가 우선 틀렸고, 둘째는 숙소가 과거에는 시내 안쪽에 있었으나 현재는 시내를 들어가기 전 큰 길가로 옮겨진 것입니다. 애초부터 공항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숙소가 위치했었던 것이어서 그리 멀지 않게 이동했을 때 이미 지나쳐 간 곳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천신만고 끝에 찾은 숙소를 보자 아내의 얼굴이 확 폈습니다. 호텔의 아름다운 외관하며 프론트 분위기도 좋았고.. 온통 햐안색 객실까지 모든게 완벽했습니다. 지친 몸을 침대에 던지고 잠시 누워있자 아내가 밝은 얼굴로 이야기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고는 진정한 산토리니 관광을 위해 어디부터 갈지를 위해 지도를 펼쳤습니다.
2000.5.21 그리고 10년 - 7 <그리스 그리고 2년> 발이 부르트도록 아테네 시내 골목을 누비며 돌아나니자 서서히 날이 저물어 갑니다. 숙소를 들어가고 나올 때 봤던 아테네 시내의 음산한 기운들을 생각하자니 어둠이 짙어진 후에 숙소로 향하는 것은 쉽지 않을 듯 하다는 판단하에 조금이라도 서둘러 숙소를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시내를 빠져 나오자 보이는 공원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나 봅니다. 사실 이럴 때면 불평등한 몸뚱이 구조를 비교해 가며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물론, 살찐게 자랑도 아니고 입장 바꿔 생각해 보자는 제안 자체가 타당한 논리로 받아들여지기도 어렵다는걸 아는 저로서는 더이상 저의 입장만을 내세우는건 억지라는걸 알고 있습니다. 결국 공원으로 가기로 하고 이동하는 길가에서 상가나 매표소 정도로 보이는 건물이 불에 타버린 흔적이 있는 광경을 보고는 놀라움에 발길을 멈추고 사진 한장을 담습니다. 경제위기에 빠진 그리스.. 그 후 2년이 넘었으나 결국 파산은 시간문제로 까지 상황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정이 많아 그런지.. 한번 여행갔었던 나라는 관심도 더 많이 가고 애착도 더 깊어집니다. 제2의 고향까지는 아니더라도 제 흔적을 남겼던 곳이 갈수록 안좋아지고 파산까지 치닫는다는 말을 접하니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공원을 빠른 걸음으로 훑어 보다시피 보고 나와서는 숙소로 향했고 숙소 앞 큰길을 지나며 저녁거리를 근처 슈퍼에서 구입하였습니다. 도저히, 저녁을 숙소 근처 식당에서 해결하는건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방에서 내내 들려오는 경찰 호루라기 소리와 청년들이 지르는 소리가 뒤엉켜 새벽을 넘어서까지 이어졌습니다. 곧 방문할 산토리니의 푸른 바다를 꿈꾸며 그리스 아테네에서의 하루밤은 그렇게 저물어 갔습니다.
2000.5.21 그리고 10년 - 6 <식사 주문과 10년전 경험> 여행지에서 빠질 수 없는 대목이 현지에서 먹는 음식일 것입니다. 아내와 저는 발바닥의 감각이 무뎌질 정도로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담고 다양한 기념품들을 구경하고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 틈에 뒤섞여 다니면서 왔던 길을 또 가고 혹시라도 빠트리고 가보지 않은 곳은 없는지 열심히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눈에 띈 노천 테이블에서 음식들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도 저 곳에서 식사를 해야겠다 싶어 아내도 동의하였고, 이내 좀 더 멋진 장소를 찾아 다시 지나온 길들을 되새겨 가며 골목골목을 누볐습니다. 한끼 식사 해결 보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여행지에서 하는 경험을 추가함에 있어 후회되지 않은 장소를 선택하려 발바닥에서 전해져 오는 열기 보다 추억을 남기는데 더 중요한 가치를 두어야 했던 저희가 지금에 와서는 조금 후회가 됩니다. 그렇게 꽤나 오랜 고민 끝에 더이상 지쳐오는 몸을 버티기 힘들어 마침 눈에 들어온 가까운 곳에 있는 식당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스 여행 전 사전 지식으로 알아본 몇가지 음식들의 이름이 머리속을 지나갔고 그 중 메뉴판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던 Greek Salad(일명 : 그리스식 샐러드)와 다른 하나의 음식을 시켰습니다. 이렇게 외국에서 음식을 주문해서 먹어본 경험이 2번째인 저희는 나름 경험치를 발동하여 여유로운척 즐기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내 밀려오는 불안감은 감추기 힘들었습니다. .... 10년전 신혼여행지로 간 프랑스 파리 상제리제 거리 노천 카페에서 식사를 주문하였고 몇날 몇일을 맞지 않는 현지 음식들로 괴로워 하며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던 저희는 반드시 고기를 먹어야 겠다는 일념하에 메뉴판에 고기를 의미하는 beef 라는 글자만 찾아 주문하였습니다. 푸짐하게 먹고 싶은 충동까지 겹쳐 꽤나 고가에 - 약 120프랑 가량이며 10년전 프랑스는 현재 사용되는 유로가 아닌 자체 통화 단위인 프랑을 사용하였으며 1프랑이 약 1100원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해당되는 메뉴 1개와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 1개를 같이 주문하였습니다. 첫번째로 나온 메뉴는 저렴하게 주문했던 메뉴로 예상보다는 먹을만 하여 다행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고가의 메뉴가 나왔을 때 저희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얇은 접시 위로 핏물이 흥건하게 있고 약 2~3mm 정도 되는 소고기가 거의 익지 않은 상태로 달랑 1장이 나왔습니다. '쿵'....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은 소리입니다. '120 프랑... 120 프랑.... 120...' 정말이지 이 상황을 어찌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난감해 했고.. 하소연할 수도 없는 저희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정말 눈문을 머금고 그 얇디 얇은 소고기를 나누어 먹으며 곱씹고 또 씹었습니다. 그렇게 음식을 모두 먹자 계산서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계산서에는 많은 글자들과 금액이 적힌 숫자들이 있었고 우리의 눈에 들어온 숫자는 정말 이걸 먹고 이 돈을 내야 하다니.. 싶을만큼 치가 떨릴 정도였습니다. 몇날 몇일을 돈을 아껴가며 비싼거 안먹고 가급적 걸을 수 있는 거리는 걸어서 아꼈던 돈을 한방에 날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계산서에 적힌 금액을 지불하려 하자 종업원은 계산서 하단에 적힌 문장을 보여 줍니다. '아.. 서비스 요금... 10%' 정말 '젠장' 이었습니다. 너무 아끼면 결국 한방에 거덜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 경험이었습니다. .... 아테네 식당에서 즐기는 식사는 걱정했던 것보다 훌륭했습니다. 근데 이상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식사 후 계산도 하지 않고 그냥 일어서는 것입니다. 저희는 식사 내내 다른 테이블을 주의깊게 살피며 계산과 팁(서비스 요금)을 어떻게 지불하는지 눈여겨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마다 테이블 위에 돈을 올려두고 그걸 컵이나 그릇등으로 올려두어 고정시켜두고는 자리를 뜨는 것입니다. 주의 깊게 보길 잘한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한것이 그럼 잔돈은 어떻게 받는걸까요? 정말 이상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잔돈을 다 팁으로 주는 것이란 말인가요? 저희는 한 테이블만 더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식사를 끝내고서도 한참을 더 지켜봤는데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내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러고보니 정말 식사를 빨리 하고 자리를 빨리 뜨는 것 같다. 저 외국인들을 봐.. 음식 시켜 놓고 먹는 것보다 무슨 할말들이 저리 많은지 쉴새없이 얘기를 하네.." 정말 그랬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일어나는 테이블을 하나만 더 보기로 했던 계획은 결국 한국인의 특성 상 더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장사의 방해가 되는건 아닐까 하는 국민성이 발동하여 결국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계산서를 요청해서 받고는 대략 10% 서비스 요금까지 포함한 다음 합산해 보니 그닥 잔돈이 많이 차이 나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쿨한척 서비스 요금 더 내는거지.. 라는 생각으로 일어섰고.. 눈짓으로 종업원에게 음식값이 컵 밑에 두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가려던 저희를 지배인쯤 되보이는 분이 불러 세웠습니다. 그러고는 잔돈을 주는데 서비스 요금을 전혀 포함하지 않은 순순히 음식값만을 계산한 나머지를 주는 것입니다. 음식값에 포함이 되었던건지 아니면 저희가 불쌍해 보여서 안받은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 지배인은 몇가지 질문을 하며 저희가 한국인임을 알려주자 몇마디 우리나라 말까지 유창하게 곁들이며 당황스러워하던 저희를 유쾌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식당을 빠져나오며 이 일은 훗날에 재밌는 에피소드가 될거 같다고 머리속에 담고는 시내로 향했습니다.
2000.5.21 그리고 10년 - 5 <시내 관광> 신전 관광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다니던 아내가 시내로 내려오는 길에는 어느새 얼굴이 풀어졌습니다. 특별히 무슨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내의 얼굴이 풀어진 것은 순전히 이번 여행을 더이상 망칠 수는 없을거라는 스스로의 결심이었을 것입니다. 처음 여행을 계획하면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당신의 모습만을 아름답게 사진으로 남기는 여행으로 만들거야..." "그럼 자기는?" "난.. 한장도 안찍힐거야..." 그래서인지 아내는 시내로 이동하는 내내 여기 저기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도 미소를 짓거나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다양한 포즈를 취하면서 쉴새없이 사진 모델이 되어 주었습니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듯 더욱 신나하는 아내의 얼굴과 가려진 선그라스 너머에 남아있을 근심이 걱정되면서도 이 순간을 즐기고 나중에 생각하자고 잊어버렸습니다. 아테네 관광지 주변은 이색적인 풍경탓에 별거 아닌 상가에도 관심이 가고 어느 도시의 상가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임에도 신기해하고 같은 물건이 즐비하게 있어도 본거 또보고 재미있어 하게 되버렸습니다. 어느 한 슈퍼마켓(슈퍼라 부르기도 뭐하고 구멍가게라 하기에도 뭐한 애매한 크기의 식료품 가게) 앞에 진열된 제철 과일들이 우리 나라에서 보던 과일들보다 훨씬 그 빛과 색이 고왔습니다.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과 매서운 바람을 견디며 자라난 과일들이라 더욱 탱탱하고 생기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한 입 베어 물고 싶은 충동을 자제하기 쉽지 않아 몇가지 사고 싶었지만 무거운 짐을 들고 돌아 다닐걸 생각하니 이내 생각을 접었습니다. - 이후에 호텔에 들어가기 전 저녁거리로 먹을 장을 보기 위해 호텔 주변 식료품 점에 들러 몇가지 음식들과 과일들을 구입하였으나 낮에 본 그런 신선함이나 빛깔이 없어 살짝 후회되었습니다. - 덧, 그동안 회사일로 바쁜 나머지 연재에 소홀했습니다...^^; 다음편을 기대해 주셔도 좋습니다...ㄷㄷㄷ
2000.5.21 그리고 10년 - 4 <생각의 차이> 호텔에서 나와 아테네 시내를 관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첫번째 여행 목적지를 정하기 위해 호텔 로비에서 받아온 지도를 펼쳐 몇몇 유명한 광장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유명한 거리들을 방문지로 정해놓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빠른 시간안에 돌아 볼 수 있는 경로들을 지도에 그린 후 첫 목적지로 파르테논 신전을 가기로 합니다. 호텔은 아테네 중심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사방으로 이동할 때 지하철을 타면 어느 지역이든 쉽게 이동이 가능합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이동하는 거리 골목 골목 사이로 경찰들의 호루라기 소리가 시끄럽고 이내 곤봉을 든 경찰들이 한 청년을 둘러 싸서는 질질 끌고가는 장면이 순식간에 벌어집니다. 한바탕 소동에 먼지가 날리며 시끄럽던 거리를 물 자동차가 강력한 물줄기를 뿜어내며 길가로 먼지며 쓰레기들을 밀어 냅니다. 그리스는 청소를 이렇게 하는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테네 지하철을 타기 위한 표구매와 개찰구 통과 등 대부분의 통역 과정들을 무사히 할 수 있었던건 아내의 힘이 컸습니다. 12년전 신혼여행을 갔을 당시만 해도 큰 어려움 없이 짧은 영어로 무사히 여행을 마쳤던 것 같은데.. 그 후 영어를 관심 밖으로 던져 놓은지 오래되었던지라 말문이 쉽게 막혀버리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였고, 그때마다 아내는 놀라운 모습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자주 영어 동화책과 영어 교재들을 읽고 공부해왔던게 많은 도움이 되었나 봅니다. 그렇게 도착한 역에서 나와 파르테논 신전을 바라보니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습니다. 신전이 있는 공원 입구에 다다르니 이내 지쳐버렸고 슬슬 여행보다 부족한 휴식을 위해 잠이나 실컷 자고 싶다는 악마의 유혹이 슬그머니 고개를 듭니다. 신전은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고 넓은 곳으로, 챙겨간 그리스 여행 안내 책자에는 파르테논 신전 이외에도 그 주변 신전까지 소개되어 있어 아내는 가급적 많은걸 보고 싶어했습니다. 무거운 몸뚱아리, 여행에서 누적된 피로, 겹치는 불운, 준비 과정의 실수 등등.. 여러모로 몸과 마음이 지친터라 굳이 비슷한 신전들을 더 본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어서 아내 의견에 반대하였고 이런 제 모습에 아내가 화가 났습니다. 짜증이 잔뜩 난 아내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파르테논 신전 속 대부분의 사진에서 웃음기가 사라졌습니다. 결국, 아내는 제 의견대로 다른 신전 관광을 포기하고 시내 관광을 위해 발길을 돌렸습니다. 다시는 오지 못할 여행지에 아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과 한편으론 더 효율적인 여행을 위한 선택이었으리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어떤 생각을 할지 머리속이 복잡해졌습니다. 덧, 본 여행기는 Prologue와 Epilogue를 포함한 총 16부의 연작입니다. 궁금해 하시는 그 사건은 마지막 Epilogue 편 귀국길에 벌어집니다.
2000.5.21 그리고 10년 - 3 <익숙한 듯 다른> 카타르 도하에서 출발한 그리스 행 비행기는 무사히 아테네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지중해 바다를 건너 그리스의 여러 섬들을 지나는 동안 이제 드디어 여행으로서의 본질에 성큼 다가선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아테네 공항에 도착하여 픽업을 위해 나온 택시를 타고 도심지로 향하는 동안 서서히 불안해 지기 시작합니다. 그리스 도착 첫날부터 택시 지붕을 때리는 빗방을 소리와 호텔로 향하던 택시는 그리스 전역에서 펼쳐지는 시위대들을 피해 골목길을 돌아 돌아 호텔과 거리가 좀 떨어진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 사실 그리스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하던 때에 이미 그리스는 여행주의 국가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2010년 4월경 아이슬란드에서 터진 화산으로 인해 유럽 전역이 비상사태였고, 수많은 항공사들이 결항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거기에 더불어 그리스는 경제 위기에 따른 정부에 대항하는 시위가 매일 반복되었고, 심지어 여행 1주일 전에는 시위대가 관광객을 공격했다는 뉴스도 나왔습니다. 무모한건지 용감한건지.. 그저 평생 한번쯤 가보고 싶은 나라 그리스와 산토리니의 아름다운 풍경에 오래전부터 매료된 저는 그런 뉴스 따위는 한귀로 흘려버릴만큼 대담해 졌습니다. ...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낸 운전수는 저희 부부를 안내하며 빠른 걸음으로 걸었습니다. 도심에 있는 작은 공원을 가로질러 비슷하게 생긴 건물 사이를 지나 호텔이 보이는 먼 발치에서 호텔을 손짓으로 안내하여 주었습니다. 호텔로 걸어가는 동안 짓다만 건물이 흉측하게 방치되어 있고, 골목 사이 사이 불에 타버린 상가들과 무리지어 지나가는 시위대들을 보면서 다양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자기 나라는 경제 위기로 힘들어 하는데.. 관광 온 우리에게 헤꼬지하면 어떻게 하지?' 빠른 걸음을 재촉하여 부리나케 호텔로 들어가 객실 배정을 받고는 여행 피로를 풀 생각은 뒤로 한채 아내가 창밖을 내다보며 근심어린 표정을 짓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익숙하게 보던 장면인데 낯선땅에서는 덜컥 겁도나고, 한편으론 왠지 모를 동질감으로 힘이 되어 주고 싶다는 생각도 한켠 들었습니다. 어느 나라나 서민들에게는 못마땅한 정부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고 불만을 적절히 해소할 방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결국 행동으로 표현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낯설지만 공감이 되기도 한 묘한 감정이 반복되게 되었습니다. 낯선 땅... 불안한 정국... 반복되는 불운... 이런 모든 것들로 인해 소극적으로 변해버린 제 자신과 상황 극복이라는 과한 의무감이 후에 있을 엄청난 사건을 야기시키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2000.5.21 그리고 10년 - 2 <낯설음으로의 초대> 그리스행 비행기로의 경유를 위해 대기하는 시간이 약 3시간 가량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직은 조금 쌀쌀한 새벽공기로 인해 차가운 공기가 감싸고 도는 낯선 공항 대기실에서 다른 여행객들을 살펴보는 것이 같은 여행자로서의 동질감과 동시에 내 품에 가진 여행 경비에 대한 보호 본능으로 인해 아내와 저는 교대로 화장실을 사용하며 부시시한 얼굴과 머리를 바로 고쳤습니다. 혹여나 실수하지 않을까 두려워 탑승 게이트를 일찌감치 찾아놓고는 남은 시간동안 딱히 할거리를 찾지 못한채 묵묵히 대기중이던 아내가 가방 속에 쟁겨둔 자그마한 스케치북을 꺼내 무얼 한참 그리기 시작합니다. 조금씩 윤곽이 드러나고 그게 제 얼굴임을 알아차리기에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제 기분을 돌려 주려고 애를 쓰는 모습 속 밝은 웃음에는 웃음 이외에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실 도하로 오는 비행기 안 좌석이 다른 탑승객들이 이용하는 좌석보다 매우 불편한 좌석이어서 (일반석 가운데 좌석 중 좌석 4개가 3개로 줄어드는 비행기 꼬리 부분 좌석) 상당히 자리가 좁았고, 장시간을 그렇게 오다보니 여행에 대한 아름다운 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이 순간을 빨리 벗어났으면 싶고 돈없는 설움이 머리속을 꽉 채웠습니다. 이렇게 불편한 좌석이 할당되기 까지도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여행 전날에 미리 생각해 둔 수속 시간을 줄이기 위한 인터넷 수속이 오히려 해가 되었습니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인해 제가 처리한 방법이 수속을 밟기 위해 줄을 서는 대기 시간을 줄여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탑승 시에 줄을 서지 않고 탑승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였고 결국 줄을 설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탑승객들 뒤에 오랜 시간 줄을 서서 대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희 차례가 돌아왔을 때 수속 담당자는 저희를 친절하게도 옆에 비어 있는 인터넷 수속 전용 창구로 안내하였고... 남들보다 한참이나 뒤쳐저 자리 배정을 받게되어 불편한 좌석이 배당된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여행에서 나중에 올 더 큰 위기를 암시하는 복선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2000.5.21 그리고 10년 - 1 <prologue> 2000년 5월 21일.. 아내와 결혼한 날입니다. 그 후로 10년이 훌쩍 지나 12년차가 되었네요. 신혼여행 이후로 여행이라고는 고작 친정 식구들과 다같이 갔던 제주도 여행이 전부였습니다. 신혼여행은 유럽여행을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배낭 자유여행을 갔었고 대부분은 걷거나 길거리에서 끼니를 해결하거나 잠은 기차나 버스에서 해결하는 초절정 저렴 투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고생은 고생만큼 했던.. 그래서 더 기억이 애잔하게 남은 최초의 여행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결혼 10년차가 되던 지난 2010년 장장 1년여의 고민과 약 3개월전부터 준비한 야심찬 해외여행 2차 준비는 예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여권의 영문명이 첫번째 여권에 기록된 영문명과 달라진 아내 이름으로 인해 예약한 항공권을 사용할 수 없게되어 일자를 급히 변경해야 했던 상황에 처하고, 여행사의 일정 변경 요청에 따른 가격 급등과 해당 일자에는 항공권 조차 구하기 힘들어진 상황까지 여러모로 순탄치 않았습니다. 여행사의 실수가 일정 부분 인정되어 최초 계약했던 금액과 거의 동일하게 일정을 수정하고 변경된 여권명으로 다시금 예약하기 까지 1주일간 받았던 스트레스는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난감한 상황에 처할 때면 떠오르는 탄탄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그렇게 여행 출발 1주일 전까지도 급박하게 변경되고 - 여행사에선 미리 선약속을 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출발일자에 항공권만 처리된 상황이었고 돌아오는 일자에 항공권은 수소문중이었습니다. - 출발 전날에서야 숙박 및 항공권을 안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리스 산토리니로의 여행은 시작되었고 우리는 5월14일 밤 12시경 인천공항을 떠나 중간 경유지인 카타르 도하의 도착하게 됩니다. 현지 시간 꽤나 이른 새벽녘이고 비행기에서 내리기 직전 아내의 상기된 얼굴과 이국적인 도하의 공항은 앞으로의 여정이 어떻게 시작될지 기대감과 우려를 잔뜩 심어주었습니다.
Next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