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5.21 그리고 10년 - 14
<엽서보내기와 고난의 시초>
산토리니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습니다.
아침 일찍 호텔 객실을 비워줘야 할 시간 이전에 짐을 모두 정리한 저희는 산토리니 공항으로 이동하기 전 아쉬운 마음에 호텔 프론트에 짐을 맡기고 시내로 이동하였습니다.
차를 타고 이동했을 때는 몰랐던 도로 주변 경관도 지중해의 푸른 바다와 하늘색이 더욱 짙게 느껴졌습니다.
전날 이아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이것 저것 사둔 기념품들 중 엽서를 아이들에게 보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어머님께 맡기고 우리 부부 둘만 온 여행이라 미안하고 걱정도 많이 되고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곳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는게 아쉽고 안타까워서 여행을 마친 후에 다음 여행 계획은 가족 여행 계획으로 세워두었습니다.
정확한 일정은 미정이지만 조금은 덜 막연하게나마 약 5년후로 예정하고 여행지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산토리니의 우체국은 현대식이어서 부담감이 덜했습니다. 저희들 말고도 많은 관광객들이 엽서와 우편물을 보내기 위해서 이용중이었습니다.
엽서 2장에 큰딸과 작은딸에게 각각 1장씩 내용은 아내가 먼저 채우고 제가 나머지를 마저 채우는 식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엽서를 보내기 위해 보낼 지역을 말하고 우표를 구입해서 붙이고하는 일련의 방식이 한국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아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약간의 의사 소통 문제가 있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습니다.
받을 곳은 아이들의 학교로 하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그리스 산토리니의 풍경이 담긴 엽서를 아이들에게 건네주는 모습을 상상하며 저희 아이들이 부러움을 한껏 받을 생각을 하니 뿌듯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상은 상상으로만 그쳤습니다.
저희가 한국에 돌아오는 시간보다 훨씬 더 늦게 도착할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고 늦어야 하루 이틀 정도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몇일을 더 기다렸지만 아이들이 옆서를 받았다는 얘기를 몇일이 지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서프라이즈가 언제쯤 일어날지 기대하는 것도 서서히 잊혀질 무렵 아이들이 엽서를 받았습니다.
예상과 달리 아이들의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아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엽서를 주었고 아이들은 이미 부모들이 돌아와 몇일을 함께 지난 이후여서인지 이렇다할 감흥도 없고 부러움도 없는 밋밋한 서프라이즈가 되버렸습니다.
해외 여행 중 옆서는 도착하자 마자 보내는게 좋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린 항공우편은 장기 여행이 아니고서는 기대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그렇게 엽서를 보내는데 성공한 저희는 이후 남은 시간의 여정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의견 차이로 갈등을 빚었습니다.
아내는 좀 더 둘러보자는 의견이었고 저는 일단 산토리니 공항으로 이동할 버스를 알아봐야 할 것 같고 너무 늦어지면 호텔로 돌아가서 짐을 찾아 오는데 걸리는 시간까지 예기치 않을 일이 일어나 일정의 혼선을 가져올 수 있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먼저 짐을 찾아와서 버스 시간이나 노선을 알아보자고 하였습니다.
아내는 얼마 걸리지 않을 거리인데 굳이 그렇게 까지 해야 하느냐는 논리였지만 결국 제 고집으로 호텔로 이동해 짐을 찾고 무거운 짐을 질질 끌며 버스 터미널로 이동했습니다. 사소한 말다툼이 있은 후라 아내와 저는 멀찌감치 서로 떨어져 이동을 했고 아내는 혼자 터미널 주변 다른 곳으로 자취를 감췄습니다.
버스 노선 확인을 하고는 아내의 동선을 살펴 확인한 후 아내에게 버스 정보를 말해주면서 은근 슬쩍 얼버무리고는 버스 출발 시간에 맞춰 탑승하고 공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리스의 처음 도착했을 때 묵었던 호텔로 다시 돌아왔고 이래 저래 몸도 마음도 피곤한 탓에 호텔에서 밖을 나가 보는게 별로 탐탁치 않았습니다.
마지막 밤과 다음날 돌아갈 비행 준비를 위해 그리스로 올 때의 실수를 만회하는 차원에서 경유지인 카타르 공항에서 대기시간을 단축하는 인터넷 수속을 다시 한번 시도해서 성공하고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제 그리스에서 하루는 다음 날 하루만을 남겨둔 채 호텔의 밤은 저물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