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순간에 찍히되, 순간을 잡으려는 예술은 아니다.
시인의 뇌리를 스치는 한 줄기 영감이 한줄의 시를 이루듯
사진가의 망막을 가로지르는 한 순간의 빛이 한 장의 영상을 형성한다.
순간적 영감을 잡기 위해 시인이 명포수가 되어야 할 필요가 없듯
한순간의 빛을 잡기 위해 사진가가 일등사수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사진가가 추구하는 "결정적 순간"이란 찰나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시간적 순간"이 아니라 그 사물의 의미가
작가의 내면과 만나는 "심리적 순간"이기 때문이다.
한 순간의 영감이 스치기까지 무수한 밤을 지새듯
1/125초의 한 순간을 기다려 사진가는 인고의 무한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한 순간의 영감이 한 송이 국화로 피어나듯
1/125초의 한 순간에 사진가의 전인생은 집약된다.
-한정식 지음 사진예술개론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