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지리산 휴게소에서 십 분 간 쉴 때,
흘러간 뽕짝 들으며 가판대 도색잡지나 뒤적이다가,
자판기 커피 뽑아 한 모금 마시는데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종이컵 커피가 출렁거려 불에 데인 듯 뜨거워도,
한사코 버스를 세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가쁜 숨 몰아쉬며 자리에 앉으니,
회청색 여름 양복은 온통 커피 얼룩.
화끈거리는 손등 손바닥으로 쓸며,
바닥에 남은 커피 입 안에 털어넣었다.
그렇게 소중했던가,
그냥 두고 올 생각 왜 못했던가.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삶 깨기 전에 삶은 꿈이다.
이성복 <그렇게 소중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