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카드 한 장
어제인가 메신져에서 학교 후배녀석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학부 마지막 시험에 대한 예의"를 차려야겠다고, 오늘은 공부할께요라고 하는 녀석을 보면서 얼마 전 내가 졸업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학부 마지막 시험이란 걸 치른게 딱 작년 이맘때이지 싶습니다. 무슨 교양과목이었는데, 딴에는 마지막 시험이니 멋지게 봐줘야지라고 해놓고는 막상 시험은 대충 치고 나와버렸던 것 같은 기억입니다. 뭔가 알 수 없는 섭섭함 때문에, 떠나라는데, 빨리 떠나자는 생각이 도리어 앞서 괜시리 마음이 착잡했던 날, 동기중에 가장 뒷선에 서있던 터라, 기쁨 혹은 시원섭섭함을 함께 나눠줄만한 친구가 없던 12월.
항상 옛날에 찍은 사진만 올리게 됩니다. 이 사진을 찍은게 2월이니까, 그 뒤로 두 달, 막 대학이란 걸 졸업했을 때입니다. 입학하고 이러저러하게 팔년이란 세월을 학생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게해준 학교를 막상 떠나자니 괜한 기억들. 고등학교 졸업하던 그 날, 중학교 졸업하던 그 날도 그랬을까 싶은 사람에 대한 갈망, 아련함, 아쉬움 같은 것들.
처음에 다른 곳에, 또 내 홈페이지에 이 사진을 올릴 때는 "너는 기다림의 장소가 되지 마라"는 제목이었던가. 그럴겁니다. 제법 쌀쌀했던 이월, 학교 정문 앞의 전화부스에 앉아 여느때처럼 막차 버스를 기다리며 맥주 두어캔, 담배 한 갑 사놓고 앉아 마냥 간간히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을 바라보고 앉았습니다.
나는 그저 기다리는 것을 기꺼워하는 사람입니다. 생을 살아가며 수많은 우연에 기대어 살며, 어느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막연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다가 내 앞에 서는 누군가에게 마치 그를 기다린 양 웃음을 날리는 일을 생의 한 기쁨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나는 하지만, 기다릴 줄은 알았지만, 어느 누군가의 기다림 같은 것은 미처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내 기다림에 겨워, 나와 같은 기다림의 삶에 신경쓰지 못하는 자입니다. 나는 누구에게 약속하지 않고 누구라고 정해놓지 않고 기다리는, 기다림의 폭군입니다.
나는 기다림으로 상처받지 않기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음에 분명합니다. 나는, 기다리는 것을 지겨워하기 전에 손내밀어 전화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삶에는, 더불어 살고자 하는 삶에는,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