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녀석을 만났던 밤을 기억한다.
신입생으로 우리 연구실에 온 녀석.
그 날 밤 맥주를 마실 때 순박한 외모만큼 순진한 녀석은 긴장하고 있었고
긴장한 그 손은 오징어 안주가 나오기 무섭게 바르르 떨며 1미리로 오징어를 해체하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무서웠나?
그 날엔 몰랐다.
혼자하는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이 녀석과 여행을 하게 될 줄은.
평생 몰랐다.
내가 스페인어를 말하게 될 줄은.(사실 민망하게 짧은 실력이지만)
입사를 하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멕시코로 출장을 가게 되고
자연스레 스페인어를 배워야겠다고 마음 먹은지 1년 반이 지나서야 배우기 시작했다.
그 1년 반 동안엔 줄기차게 멕시코 출장을 다녔었는데. 그 동안은 뭐하고 그제야 배우기 시작했는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하던 그 때는 더 이상 출장을 갈 것 같지 않았고 아직까지 멕시코 출장은 없었다^^;;)
그래서 더욱 몰랐다. 그 때 배운 스페인어 몇 단어가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은.
여행 가방에 챙겨간 스페인어 교재를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복습하게 될 줄은...
작렬하는 태양 아래 4시간을 기다려 레알 마드리드 경기 표를 구하는 것으로
이 녀석과 함께하는 스페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게인가 하고 생각했던.... 커플티 아닌 커플티(단지 녹색티란 이유로 사귀나? 하고 생각했다)를 입은 두 녀석은
쉼없이 드나들며 맥주와 감자 튀김 등을 먹었고, 처음엔 대마인가 생각했던 말아피는 담배를 연신 피워댔다.
뒤에 있는 덩치 큰 아저씨는 독특한 영국식 영어로 아스날이 어쩌고 지난 번 게임이 어쩌고하며 끊임없이 축구 얘기를 했고.
암표상은 우리에게 핸드폰에 표의 가격을 찍어 흥정을 걸어왔다.
스페인 티비에서 인터뷰도 시도해 왔으나 짧은 스페인어 덕에 놓치고 말았고,
한 일본 녀석은 쭈뼛쭈뼛 다가와 '스미마생' 이라 말하고는 내 눈치를 살폈고,
뭐라(어느 나라 말로) 답할까 고민하던 나는 '왓' 이라고 (의도치 않게 퉁명스럽고 조금은 위협적으로 ^^;) 짧게 답했고
녀석은 '아임 소리~' 하면서 도망치듯 사라졌다.. 겁주려던 건 아니었어 나야 말로 '아임 소리'
그렇게 보내던 4시간은
마드리드가 신의주와 비슷한 위도에 있다는 여행책의 말만 믿고 길을 나선 나에게 실제보다 더 더웠다.
(신의주가 그리 더운 곳인 줄도 처음 알았다 ㅡ-;;)
여행지도, 함께한 사람도, 여행의 테마도, 모든 것이 우연으로 시작된
2008년 4월 28일. 축구 유니폼 뽐뿌가 시작된 날 ^^;;
그리고 내 동생 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