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ra House
'저장함을 비우세요'로 시작하는 문자를 받았다..
뭐야 이거? 하면서 찬찬히 아래로 읽어가다 보니...
핸드폰이 추가한 내용이었다.
전에 쓰던 핸드폰은 아무 말 없이 오래된 기록들을 지웠었는데,
새로 바꾼 핸드폰은 친절하게도 문자함이 가득차면
새로운 문자가 올 때마다 저장함을 비우라는 메세지를 추가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새 핸드폰을 장만하고는 한동안 문자함이고 최근 통화 목록이고 모든 것들을 비우고 다녔었다.
가벼운 바람이고 싶고 먼지이고 싶은 마음에
유치하지만 항상 목록없음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시나브로 저장함이 그리고 통화 기록이 가득 차 있었다.
지가 뭔데 비우라 마라야 하는 생각에 기분 나빠하는 내가 어색했다.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도 기분나빠 할 것까진 없는 일인데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는 비우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그 마음을 들키고만 것이 기분 나쁜 것이었다.
애써 부정하고 비우고 있고 비웠다고 속이고 속은 척 하고 있었는데
비우세요..라는 핸드폰의 한 마디에 속내를 들켜버리고 말았고 나도모르게 인정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에이~!
핸드폰 따위에게도 들키는 마음 감춰 무엇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