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순간 불과 몇 달 전의 일이었지만, 2006년 끝 무렵에는 많은 변화들로 인해 정신이 없었다. 햇볕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선명해 지듯, 즐거운 일들도 있었지만 그만큼의 힘든 일들도 그림자처럼 따라오곤 했다. 기타와 그 노래를 처음 들었던 날이 기억난다. 그 날은 겨울답지 않게 햇살은 따사로웠고, 오랜 만에 온기를 머금은 아스팔트는 여름날의 아지랑이 만큼은 아니지만 훈훈한 난로처럼 따뜻해 졌다. 핸들 너머 아침 라디오에서는 이문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006년 한 해동안 가장 인상적인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게스트로 나온 음악 전문 기자가 자신이 2006년에 들었던 음반 중 가장 좋았던 곡을 들려 주겠다며 이 노래를 틀어 주었다. 샌디 톰(Sandi Thom) 의 ‘I Wish I Was Punk Rocker (With Flowers) In My Hair’ 엘라니스 모리셋이나 수잔 베가 같은 힘과 에너지가 가득한 여성 포크 음악...쿵작쿵작하는 리듬과 활기찬 기타, 막 데뷔하는 신인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넘치는 보컬., 인상적인 가사까지....6~70년대의 히피풍의 음악들이 현대식으로 재해석된 느낌이었다. Oh, I Wish I Was Punk Rocker With Flowers In My Hair.....그리 어렵지 않은 가사를 듣고 있으니 60년대의 사랑과 평화를 외치던 그 시대를 동경하는 마음이 가슴 속까지 전해져 왔다. 오랜 만에 하나의 음악이 마음 속의 어둠을 천천히 몰아내고, 한 겨울의 따뜻한 햇살을 가득 만끽하게 해주었다. ‘노래하는 사람을 쏘지 마...’ [20세기 소년] 이라는 만화를 보다 잠시 눈이 갔던 말이 생각났다. 기타를 들고 총을 든 군인 앞에서 노래를 하는 그 장면은 세상의 그 어떤 힘 앞에서도 자유, 존엄, 사랑, 평화 등 사람이 가치 있는 것이라 여기던 걸 지키기 위해 노래와 기타를 들었던 어떤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 노래가 지키고자 했고 만들어 가고자 한 세상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문득 백 밀러에 비친 모습을 바라본다. 뜨거운 피를 식힐 곳을 찾던 청춘도 지나갔다. 생각해 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시간들을 이제부터라도 좀 더 삶 속에서 찾아가야 겠다는 생각도 잠시 해보게 된다. 몇 년 전쯤 인사동을 지나다 아일랜드와의 교류 음악전이 열리는 걸 카메라로 담을 일이 있었다. 공연의 끝 무렵, 전통 악기들 사이를 뚫고 등장한 예쁜 아가씨와 기타 한 대는 마지막에 등장한 만큼 무대 아래의 모든 사람들을 휩싸이게 만들기 충분했다. 특별히 앉을 의자는 없었지만 관객들은 가장 편한 자세로 짙은 율림의 기타 소리와 목소리를 감상했다. 때론 스트로크로 조각조각난 음들이 만들어 내는 긴 파편들을 즐기기도 하고, 음 하나하나의 깊은 존재감 속에서 계절의 틈 사이사이를 뚫고 무게감 있는 맑은 목소리를 즐기기도 했다. 이 모든 모습들이 인사동 거리와 햇살과 어울려 하나의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아주 완벽한 풍경들은 사진으로 남기기 보다 마음에만 담아 두는게 좋을 때도 있다. 가끔 그 날을 찍은 이 흑백 사진을 보다 보면 몇 번 겪을 수 없는 좋은 기억들을 어설픈 사진 한 장으로 망치고 있지는 않나 할 때가 있다. 때론 가장 좋은 풍경을 발견했을 때, 잠시 카메라를 내려다 두는 습관을 가지도록 해야 겠다. 마음 속에 그런 풍경을 담아 두어야 좀 더 마음이 담겨진 사진을 찍을 수 있을 테니까. 봄이 왔다. 황사가 분다는 일기예보는 어느새 잠잠해 지고, 꽃향기를 태운 바람들이 거리를 달린다. 계절을 지나는 봄들처럼 삶의 순간순간에는 남기고 싶은 순간들이 존재한다. 이번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가까운 곳으로 꽃비를 맞으러 가야겠다. - 자작나무 [대호] 올림
자작나무
2007-03-28 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