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 져야 할 시간 너무도 높고 너무도 쓸쓸해 하늘에 그 어떤 것이 내려와 어두워 지는 순간에는 길어진 머리를 매만져 주는 바람도 짓이겨지고 일만리 그리운 님을 찾아갈 듯 튼튼하던 다리도 가을 끝 수수꽃단 보다 더 가늘어져 가요. 그런 때를 어두워 지는 순간이라 부르곤 했죠. 이 모든 것이 허물어져 가는 순간이 우리에게도 왔어요. 때때로 나의 오후는 당신이 있어 행복했어요. 허나 지금은 늦은 바람이 저무는 시간이에요. 이 소리가 저무는 시간을 들려 주지 못해 유감이네요. 아니, 어쩌면 늘 낯빛이 늙어 보이던 내 마음일런지도 몰라요. 봐요, 저 녹색이 저무는 소리를. 계절은 여름이에요. 허나 지금부터 이 모든 것들이 시작이에요. 이 모든 풍경을 버무려 주세요. 어둡게 내려 앉는 시간들도 버무려 주고, 매일매일 지치지도 않고 산굽이를 휘리릭 도는 햇살도 버무려 주고 떨어진 도토리가 있던 곳을 물끄러미 보는 하늘도 버무려 주세요. 빛바람이 흘러만 가는 내를 건너오게 하지 말고 누가 잊고 버려둔 돌탑들 처럼 두고 오세요. 햇살로 덧칠한 녹빛 한 줌에 기뻐하던 시절로 두고 오세요. 이제 우리가 어두워 져야 할 시간이에요. - 자작나무 올림 (문득 문태준의 [맨발] 을 읽다...)
자작나무
2006-07-25 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