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ning flashed 베이징에 오면서부터 자주 번개를 본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인공강우와 관계가 있다고 하면서, 예전보다 비와 번개가 많아졌다고 내게 귀뜸해 주었다. '설마 중국이 벌써 인공강우를' 하는 생각과 '진짜 그럴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막 뒤엉킨다. ^^ 번개를 보면 일단 흥분이 된다. 뭐랄까 언제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생각과 혹시 저 놈이 나를 덮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뭐 이런 것들이 나를 흥분하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이 날은 저녁 식사 후 TV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천둥소리와 함께 번쩍하는 것이었다. 번개와 천둥 사이의 시간적 공간으로 보아 아직은 멀리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후 카메라를 챙기러 간다. 아 ~~ 이런 디카가 없다. 아깝지만 필름 카메라인 fuji 645 wi 로 잡아보는 수 밖에 작년에 디카로 번개를 찍어 본 적은 있지만 (2시간 사투 끝에 ^^ 바로 위에서 치는 번개에 놀라 셔터를 끈어서 얻어내 결과. 약간은 재수성이 있음) 필름으로는 처음이다. 더군다나 645 판 중형카메라다. 남은 컷수를 보니 8장 남짓 8장이라 긴장감이 더 밀려 온다. 천둥소리는 자꾸 들리고, 필름 컷 수는 8장 뿐이고... 일단 바로 앞에 있는 가장 큰 건물에 초점을 맞추었다. 확률적으로 건물이 크기 때문에 여기에 칠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과학적으로 맞는지는 모르겠다. (여기 회원님들이 알려주겠지.ㅎㅎㅎ) 그리고는 천둥소리와 번개치는 시간의 차이를 마음 속으로 재기 시작했다. 점점 짧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엔 8~10초 정도인 듯 하더니, 전점 시간의 차이는 줄어들어 5초 안밖 정도로 아주 짧아들었다. 이때부터 조리게를 조이고 셔터를 bulb로 찍기 시작했다. (작년에 아무 생각없이 찍던과는 천지 차이다. ^^) 한 컷, 두 컷, 세 컷은 번개없이 그냥 지나간다. 네 컷째 쯤 되었을 때 바로 앞에서 아주 이상 야릇한 소리(분명히 환청일 게다)와 함께 번쩍하며 흘러간다. 마치 뱀들이 서로 뒤엉키는 것처럼, 사나운 용처럼 서로 부딪쳐가며 건물 주변을 아주 잠깐 어슬렁 거리다 사라져 버렸다. 순간 나는 셔터를 끈고 릴리즈를 놓았다. 연극이 끝나면 허탈하다고 하지 않던가. 번개와 조우했을때의 흥분이 가라앉으니 정말 더욱 허탈한 듯 하다. 내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찍었는데도 이리 허탈하니 사진으로 남기지 못하면 얼마나 허탈할까. ( 다음이라는 희망이 있으니 오히려 덜한가? ) 그 후 번개가 멀어지자 삼각대를 접었다. 잘 나왔을까, 번개의 흐름이 잘 나와야 하는데, 빨리 필름을 맡겨야 하는데... 벌써 노심초사하기 시작한다. 걱정은 필름에 나와있는 선들을 확인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 필름을 찬찬히 보면서 이런 자연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움과 두려움 그 자체인 것 같다는 생각뿐이다. 다음에 기회가 오면 자연과 함께 숨쉬는 번개사진도 찍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때는 목숨 내놓고 찍어야 할런지 모르겠다. - fuji 645 wi + kodak slide G100 / 중국 베이징에서 -
햇님이아빠
2005-09-02 0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