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흔적 미술관에서...
[엄살]
낭만을 불지피기 위해 모아 놓은 뗄감을 주워
갈빛의 껍질을 깎아 하얀 속살을 드러내어
휘날리는 깃대로 만들어라.
그리고 붉은 피가 통하는 파이프 같은 핏줄을 벗겨
돌로 얇게 두드려 펴라.
넓게, 그리고 얇게.
그리고 깃대에다 조심스레 양 끝을 묶고
바람에 걸어 두라.
보라.
붉은 피가 갈빛으로 말라가는 풍경을.
세상의 바람은 얼마나 거친가.
붉은 빛의 피가 거친 바람에 날려
메마른 갈빛으로 머물러 가는 깃발을 보라.
하루에도 몇 번씩 동맥 위에 새파란 칼날을 들이 밀고
한 달에도 몇 번씩 차디찬 식은 땀에 가위 눌리며
한 해에도 몇 번씩 내가 하려던 건 이게 아니야.
주절거리는 혀는 닳지도 않은 채 움직인다.
언젠가 좋은 일이 있을꺼야.
막연한 희망도 지쳐갈 무렵에
지친 희망이 정말 있을까 하는 의심으로
갈빛의 깃발을 바라본다.
좋던지 혹은 엄살이던지
낭만이든지 혹은 부질없는 희망이든지
일단은 살아보자.
시간이 지나 바보처럼 웃으며
지금을 떠올리는 날이 올테니.
- 자작나무 올림
(바람 미술 박물관에서 사진 찍고 숨 돌리다 끄적끄적 낙서를 남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