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안내견 어느 날, 지하철에서 맹인 안내견을 보았다. 지하철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앞을 보지 못하는 주인 옆에 아무 말 없이 머물고 있는 녀석을 보고선 몇 번 목주위를 쓰다듬어 주었다. 여느 개와 특별히 다를 건 없지만, 더 따뜻하고 부드럽게 사람 손을 받아 들이는데 익숙한 녀석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졌다. 너도 참 많은 곳을 다녔겠구나. 앞 못보는 네 주인을 데리고... 네 주인에게 너는 새로운 눈이자 또 다른 튼튼한 발이 되어 주겠구나. 혼자 속으로 말을 걸며 목주위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르릉~' 하며 기분좋게 눈을 감는 녀석을 보고 있으니 세상의 모든 휴식 장소는 지하철 바닥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맹인 안내견은 태어날 때 부터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간들 사이에 놓여진 길을 걸어 다닌다. 어쩌면 그가 만나는 세계는 사람인 나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만큼 깊은 인생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이라는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간격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문득 요즘의 나는 맹인 안내견 보다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여 있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나는 "사람" 이긴 하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어느 만큼의 "인간" 으로 다가서 있었을까 라는 상상을 해본다. "그르릉~~" 한 여름의 휴식은 시원한 지하철 바닥에서 부터 시작되고 한 사람이 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까지는 어른이 되는 것 보다 더 어렵다고 문득 생각하게 된 오후의 어떤 날.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셔터를 누른다. 조금 흔들린 빛의 그림은, 바람에 부끄럽게 흔들리는 갈대 같던 그 날의 내 마음을 부끄럽게 보여주는 듯 했다. - 자작나무 (with Bessar R2)
자작나무
2004-06-04 1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