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멜랑씨

11:44
2014년 1월
2003.6.11 아마도 가족들끼리 롯데호텔 부페를 갔었을 것이다. 왜 갔는지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왠지모를 행복감만은 기억난다. 나는 가족들 사이에서 폭풍의 핵과 같은 고3이었다. 가끔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먹기라도 하면, 학원 끝나고 느즈막히 다 식은 고기를 먹곤 했다. 누군가는 배불러 딴 청을 피우거나, 뒷정리를 하거나 아버지와 말싸움을 하던 중이었다.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낄 무렵 가족들과 다 같이 식사하러 간 자리였다. 난 누나의 기억나지 않는 모델명의 소니카메라로 호기심에 연신 셔터를 눌렀다. 그 때 이 사진을 찍고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새삼 아버지의 웃음이 굉장히 멋스럽다고 느꼈다. 셔터 너머 바라보는 아버지와 가족들은 화목해 보였다. 그런 화목한 가정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니 나까지도 행복했다. 대학을 가고, 아버지께 물려받은 캐논의 오래된 카메라 at-1으로 온갖 사진을 찍어댔다. 한걸음 물러서서 우리 가족을 찍었던 것처럼, 내 주위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찍으며 나도 행복했다. 아버지가 쓰러지셨단 소식을 들었던 것은 강릉에 대학사람들과 선배 결혼식을 갔을 때 였다. 아직도 그 선명했던 늦가을의 찬 바람과 푸른 바다가 잊혀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며칠 병상에 계시다 필름 없는 카메라로 찍은 사진처럼 어떤 말도 남기지 않고 돌아가셨다. 아버지와는 그다지 살갑지 않은 사이였고, 고3은 대화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때였다. 나를 바라보며 웃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누군가를 바라보며 미소짓는 저 사진 속 모습 뿐이다. 오늘은 아버지의 9번째 기일이었다. 누구 말처럼 어떤 종류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거나 흐려지지않고 더 선명해지기도 한다. 기억에 대한 파도치던 감정은 잠잠해졌지만, 매년 새기는 문신처럼 이젠 조금씩 내 일부가 되고 있다. 그래도 왠지 오늘은 가면은 벗어던지고 모든 걸 쏟아내고 싶은데, 되려 맥주를 목구멍에 쏟아 붇는다. 결국에 답답한 마음에 레이소다에 쏟아 버리고 만다.
악수를 청하는 손을 꼭 잡지 못 하고 손끝으로만 잡은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제 자리로 돌아갈 시간을 알리는 알람이란 걸 본능적으로 어렴풋이 느꼈던 모양이다. 그 손을 꽉 잡지 못 했던 건 내 미련이었고, 후회였다. 그 손을 확실히 잡지 못 했던 그 순간이 또 다른 미련과 후회를 남기는 오늘이다. 요모양 요꼴로 30.
친구의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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