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5.21 그리고 10년 - 12 <내 사진과 취미>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결혼10주년과 더불어 아내의 모습을 아름답고 멋지게 남겨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게 오직 아내만을 찍을것이고 내 사진은 찍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 먹었습니다. 마음 먹은대로 거의 대부분 실행에 옮겼고 제 사진은 전체 사진 중 3~4 장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산토리니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뒤로하고 내 모습을 담는거 욕심이 날만한 일이었지만 그 조차도 불필요한 시간낭비이며 아내를 힘들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애초에 삼각대는 챙기지도 않았고 그리스 여행중 함께 나온 사진은 2장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애석한 일일 수도 있고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 사실 사진이 좋아진건 20년전 대학 시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대학을 입학하기 전까지 전 문학을 꿈꾸던 문학소년이었습니다. 고교시절 부터 시와 수필을 쓰는걸 좋아했고 그래서인지 국어 과목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물론 국어 성적도 그만큼 좋았었습니다. 하지만, 꿈을 현실로 옮기는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결국 학과는 앞으로 취업 전망이 가장 좋다는 전산을 선택했고 대학 입학 후에도 전공과 꿈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PC통신 문학 동아리를 조직하고 상당히 큰 조직으로 키워냈습니다. 그런 와중에 대학생활에서도 문학과 관련있는 교지편집국에 들어가게 되었고 3학년이 되던 무렵에 취재부장이라는 직함을 달게 되었습니다. - 편집국 선배들의 반강제적 협박으로 제가 과내 여학생을 물색하던 중 아내를 설득하여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와는 이를 계기로 점차 가까워졌고 이후 CC로 발전해 10여년의 길고 긴 연애 끝에 결혼하게 됩니다. - 취재부장이 되던 그 해에 아내는 선배들의 졸업과 더불어 편집국장이 되었고, 취재 차 카메라를 사용해야 할 일이 많이 생겨 아내와 저는 자주 함께 취재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다룰 일이 많이 생겼고 많은 사진을 찍고 좋은 사진을 골라 책에 실어야 하는 일을 해야 하다보니 사진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던 그 해 IMF가 터졌습니다. 취업이 정말 어렵던 시기에 몇달을 백수로 지내던 제게 그동안 제가 꿈꾸고 해왔던 모든 일들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딱 맞는 일자리가 생겼습니다. '한국시문화회관' 이라는 곳에서 월간지를 만들고 취재활동도 하고 사진도 다루며 기사도 쓰고 작가들과의 교류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직장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생활은 IMF라는 사회적 환경이 가져다준 상황으로 인해 과중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첫달부터 밀리는 월급에도 큰 불만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 당시 근무 일과를 재미삼아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7시 출근 ~ 11시 퇴근, 토요일 8시 출근 ~ 10시 퇴근, 일요일 격주 근무.. 격주 근무하는 쉬는 일요일에는 자작시나 자작수필을 써서 산행을 가서 낭독 - 그렇게 수개월을 있으면서 좋아하는 일만으로는 생활을 채우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끝내 제가 좋아하는 일은 현실 앞에서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고 새롭게 선택한 직업은 전공을 살려 IT 계열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렇게 10여년간 직장생활, 창업, 다시 직장.. 이런 과정을 거쳐 오면서 좋아하던 것과 하고 싶어하는 것은 조금씩 멀어져만 갔습니다. 2006년 겨울 무렵 전국민의 DSLR 취미를 발판삼아 지금의 카메라를 구입하게 되었고 잊고 지냈던 사진에 대한 열망이 조금씩 다시 살아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길게 적은 이유에는 고단한 생활로 인해 점차 잃어만 가는 또는 잊고 지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짙은 후회가 밀려와서 이고 또한 아쉬워서 입니다. 아내는 카메라나 사진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아내나 아이들을 모델삼아 사진을 찍고 사진을 골라 이야기를 담아 내는 일련의 과정이 지난 후에 결과물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감동을 받거나 재밌어 하거나 합니다. 이렇게라도 관심을 가져주는 아내가 사실 무척 고맙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조금은 더 욕심이 있는건 사실입니다. 아내는 사실 이렇다할 취미가 없습니다. 물론 살림하랴 아이들 교육 챙기랴 일하러 다니랴 무척이나 바쁜 와중에 활동적인 취미를 갖는건 쉽지 않은 선택일 겁니다. 그래서인지 집안에서나 할 수 있는 한지공예나 천공예 같은 취미를 간간히 합니다. 이 조차도 최근엔 다른 일들에 치이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소원해 진 것 같습니다. 아내가 저와 함께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하면 좋겠다는게 제 욕심입니다. 사진을 찍고 같이 토론하고 이러한 공동의 취미생활을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아내를 찍은 사진 속의 아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왠지 모를 짜릿함이 몰려옵니다. ---- 어찌하다보니 이야기가 많이 옆길로 샜습니다. 잠시 지쳐 쉬고 있는 내 모습을 문득 사진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한장 찍어 달라고 했고 아내가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는 힘겹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진입니다.
싸구려찬장에붙은칼라사진한장
2012-04-16 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