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표류기. # 3. 안주나의 크리스마스 두 번째. 수상한 남자. 제 멋데로 길러버린 길다란 머리카락, 얼굴 구석 구석을 장식한 갓가지 피어싱, 시대와 국적을 분간하기 어려운 난해한 옷 차림. 내가 좀 그렇타. 그런 나를 빌어, '7급 공무원이겠지' 혹은 '삼성전자에 다니세요?' 라고 생각하거나 묻는 사람은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드물다. 물론 그러한 정신병자를 정신병동이 아닌 일상에서 만나는 일은 더욱 드물고. 어이를 상실하고 상식을 뛰어넘는 막장의 보수가 진보의 뺨을 후려갈기는 대한민국에서 '차이'란 곧 '차별'의 동의어였음은 굳이 세세하고 꼼꼼한 나열 없이도 설명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모난 돌이 정 맞는 사회. 딱 봐도 이상한 인간이고, 보면 볼 수록 이상한 인간인 내가 그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이상해졌는지에 대한 조명과 규명은 다음에 시간 날 때 하기로 하고, 여하튼 간에 지난 16년 동안 모난 돌로 활동해 온 뭥미 서영진 선생이다 보니, 그간 맞아 온 정의 모양과 강도에 따라 분류, 분석하자면 논문 한 권이 가능할 정도. 하여간 무지하게 맞고 살았다, 나. 여행이란 게 그렇게 좋았다. 생활이라는 전선의 장막이 걷워져 버린 자들에게 '파격'이란 자신을 위협하는 적이 아닌, '보편'을 뛰어 넘는 매력의 산물로 인식 된다는 것, 몸과 마음 일치단결로다가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좋았다. 순수호의로 구성된 사람들의 이목과 관심이. 뭄바이에서 날 봤다고? 촉촉하게 목을 축이고 든든하게 배를 채우려 들어간 까페 오아시스. 사막의 한 가운데, 생과 사의 경계에서 만난 것도 아닌 오아시스가 무척이나 반가웠던 이유는 한 눈에 보아도 꼼꼼히 스캔을 해 보아야 할 일 등급의 수질 때문. 갓가지 상황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길러진 섬세한 스캔력에 힘 입어 저기 저 창가 쪽에 앉은, 혼자 일 가능성이 놀랍도록 유력한, 아시아의 필을 가지고 있으나 틀림없이 아시아 인이 아닐 그녀에게로 향했다. 천하의 진미라도 혼자라면 맛이 덜 하게 마련. 이왕 하는 식사 함께 하자는 것에 무슨 이유가 있어 능히 거절하곘는가마는, 예의상 던지는 밑밥 겸으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역시나 예상데로 아시아 인이 아닌 캐내디언. 또한 놀랍도록 유력한 가능성에 적중하 듯 혼자다. 가까이서 마주한 실체는 굴곡진 몸매와 더불어 생기 선연하고 낭랑한 음색이 더욱이 매력적이여서 마음 굳건해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결심은 굳어졌다. 그 때 까진. 급격하게 변한 환경에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내장활동의 왕성한 활동 탓에, 빈번하게 드나들어야 했던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으로 뜸 들이는 일을 끝내려 했는데, 그런데, '애들은 또 언제 온거야?' 묻고 싶어지는 여자애 둘이 분명히 날 보며 희희덕 거린다. 딱 봐도 아시아 인이 분명함은 물론 일본 인이라 단언 할 수 있는 분이기를 풍기는. '니혼징 데스까?' 라는 초급 일본어를 시작으로 몇 마디 나누는 동안(그래봐야 파인 땡큐 앤듀 수준) 꺌꺌꺌 거리며 웃는 모습이 지나치게 귀여웠다. 그 웃음으로 인한 갈등이 변심으로 치 닿는 데에는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허나 급작스럽게 계획이 변경되어 일본여아 둘과 합석하게 된 것에는 미모의 차이라던가 아시아 인으로써의 동질감 따위는 없었다. 아라비아 해 아름다운 고아에서 대도시 뭄바이 까지는 열 두 시간(나는 재수 없어서 17시간 만에 왔지만). 그렇게 겁나 먼 대도시에서 나를 봤다고 한다, 것도 잠깐이 아닌 한 두 시간을. 여행이 끝나가는 나중에 까지는 무지하게 많이 들었던 말이지만, 처음이었던 그 때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억만리 타국에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것 마냥. 여행객들 사이에서 유명짜한 뭄바이 꼴라바 거리에 위치한 까페 레오폴드에서 각종 백인 아이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난장을 연출했는데, 아시아 인은 나 하나였으니 눈에 띄는 것도 그닥 이상하지 않은 일. 헌데 메이와 카쥬나는 내가 일본 사람인 줄 알았덴다. 것도 인도에서 아주 오래 살고 있는. 물론 그 소리 또한 그 이후로 주야장천 질리도록 들었다. 물론 때 마다 강건하고 명확하게 'From Korea!' 라고 응대해 드렸었고. 뭐야, 고아에서도 날 봤어? 뭄바이에서는 물론 여기 고아에서도 날 봤다는데, 더불어 내가 손 까지 흔들며 Hi 했다는데, 당최 기억이 안 난다. 눈길만 닿으면 Hi 하고 외쳤다지만, 그렇게 외친 횟수가 대략 일백 번이 넘는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치, 요렇게 귀엽고 깜직하며 더불어 희귀한 아시아 여아 둘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어도 단단히 있는 것이다. 기억력 하나만은 누구 못지 않타고 자신했것만, 이국의 풍경이 제공하는 낯설은 환경 탓에 소프트웨어의 오작동과 하드웨어의 용량부족이 원인이 된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다보니 그만, 어디서 봤는지 생각이 나고 말았다. 참 나, 잊을 껄 잊어야지. 안주나에 처음 도착한 날(그래봐야 이틀 전), 혼자인 것 같아 말을 걸었는데, 저 쪽에서 걸어오는 제 남자친구와 한 쌍을 이루던 그녀의 안내로 값 싸고 질 좋은 호텔을 찾아가던 중, '죠넷 & 쟈넷'인가, '쟈넷 & 죠넷'인가 하는 호텔에 들어갔다. 헌데 그 '죠넷 & 자넷'인가, '자넷 & 죠넷'인가 하는 호텔이 겸하고 있는 레스토랑의 입구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단정한 단발머리의 아시아 여자를 발견, 그 단아한 미모에 대한 합당한 예의로다가 손 흔들고 환희 웃으며 전한 한 마디, Hi. 그리고 곧 바로 되돌이표를 찍는 발랄한 손짓과 청아한 음성, Hi. 어자피 사내 혼자서 취중에 쓰러질 게 뻔한 방, 아무렴 어떠랴, 아무꺼나 대충 잡아 놓고 저 예쁜 소녀와 낮술을 마셔야지, 라는 다짐으로 '죠넷 & 자넷'인가 '자넷 & 죠넷'인가 하는 호텔로 들어가 방값을 물어보니 2500루피 란다. 금액은 문제가 아니었다. 어제까지 600루피 하던 방이 오늘 내 차례에 맞아 2500루피(당시 환률 100루피 당 2800원)라는 고공행진을 일 삼았다니, 이거 괘심하다 생각할만 했다. 성수기라 그렇타는데, 그럼 어제는 비수기였냐? 할 수 없이 그 옆의 호텔 '씨 호스'에 700루피 짜리 방을 하나 얻고, 고양이 세수를 마친 후, 그 문제의 '죠넷 & 자넷'인가 '자넷 & 죠넷'인가 하는 호텔의 레스토랑으로 달려가 보니, 시간을 제법 지체한 탓 이었을까, 그녀는 간 데 없었고, 이에 질 세라, 그녀를 찾으러 이곳 저곳 여기 저기를 분주하게 움직였다. 30도를 도는 날씨가 무색할 정도의 불 같은 열정으로. 불 같던 열정은 불 같은 속도로 식어내렸다. 대략 30분을 버티지 못한 체, 그토록 무색하게 급속도로 마음이 사그라든 데에는 전적으로 안주나의 역량을 탓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안주나의 수질은 청담동을 방불케 한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라고 하지 않턴가. 중요한 것은 오늘 그리고 지금이다. 해도 비껴간 시간에 대한 복수는 잊지 말아야 할 것. 허니 오늘이라는 선물을 곱절로 즐겨볼까. 기어이 만난 단발머리의 소녀 그리고 그녀와 동행한 갈색머리의 그녀와 함께. 꽃띠 처녀들과의 점심 식사. 단발머리 소녀는 '메이' & 갈색머리 그녀는 '카쥬나'. 둘 다 꽃띠 스무 살. 웨이트레스를 같이 하면서 친해졌고, 6개월 일해 번 돈으로 인도에 왔으며, 그렇게 국경을 넘어본 것이 메이는 세 번, 카쥬나는 여섯 번이라고. 하고 싶은 공부가 없어 대학에도 가지 않았다, 라는 말이 그토록 대견하고 기특 할 줄이야. 하고 싶은 공부가 있어 대학에 다녔던 나는 공부도 안하고 학교도 짤린데다가, 국경도 넘어 보지 못했었는데. 대략적인 삶의 관성(이를테면 입학과 졸업을 반복하다 군대가고 또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바람피고 암에 걸렸다 골로 가는, 그러한)에서 남한의 아이들에게 대학이란 교양선택이 아닌 전공필수라고 생각하니,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으로 어중이 떠중이 제 갈피를 찾지 못한 체, 사회가 정해 놓은 맛 대가리 없는 노선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걸어가야 하는 실정에 통탄하며, 내 나라의 교육방식은 전면적인 개편이 마땅하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전 날 밤, 대나무를 쪼갤 때의 맹렬한 기세로 한잔, 흙을 말아 일으킬 것 같은 강인함으로 다시 한잔, 그렇게 교차반복하며 들이 부었던 폭음을 고려하거나, 고군분투해낸 위장을 위로하자면, 얼큰한 짬뽕국물에 알싸한 소주한잔이 제 격이겠지만, 여기는 인도. 시원하게 비워진 내장이나 체워줄 겸 주문한 치킨과 야채가 버무려진 롤이 나왔는데, 아, 예상과 달라도 너무 다른 모양. 기름기 좔좔 흐르는 표피를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웠다. 어거지로 집어 넣은 약간의 음식으로 철 모르는 허기의 뺨을 후려치고, 이야기나 원활하게 풀어볼 겸. 맥주 세병을 주문했다. 마치맞은 시점이란 그런 것. 병따개를 준비하지 못한 웨이터의 실수로, 테이블에 놓여져있던 라이타를 이용, 힘껏 터트리니, 어라, 애들 좋아하는 것 좀 보소. 백인 여야들이 이 방법을 잘 모른다는 것은 그간의 며칠로 충분히 검증 받았으나, 일본애들 까지 모를 줄이야. 알려 달라니, 알려 드려야지. 나름의 상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힘도 요령도 없이 처음 해보는 일인지라 쉽지 않은 모양세로 낑낑데고 있는 것을 보자니, 나 참, 귀여워서 환장하겠네. 그 고사리같은 양손을 내 투박한 두 손으로 감싸쥐고 조근조근 절차를 설명하니, 금새 성과를 보였다. 아, 그래서 골프와 당구엔 그토록이나 친밀한 밀착강의가 필요하구나,라고 느끼는 사이. 가까스로 성공해내어 활짝 웃으며 박수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 참, 귀여워서 환장하겠네. '간빠이'를 외치며 부딧치고 마시는 맥주한잔. 지난 밤의 취기는 간 데 없이, 그저 시원해라. 달~큼해라. 영국 혼혈임으로 영국 아버지를 둔 덕에, 영어를 조금 하는(왠만하면 조금 더 하지, 싶은) 카쥬나와 34개의 선진국 중에 최하위의 영어수준을 자랑한다는 일본의 현실을 반영하는 듯, 영어를 정말 조금 하는 메이, 그리고 일어를 정말 정말 조금(오겡끼데스까 & 와따시와 겡끼데쓰 정도)하는 내가 영어 일어 섞어가며 손짓 발짓을 일 삼는 대화는 비견이 드물게 유쾌헀고 그렇게 낮부터 들이키는 맥주는 무척이나 달디 달았다. 이런 게 일본애들 특유의 샹냥함과 붙임성일까 싶게 메이와 카쥬나는 기특한 리액션에 화창한 웃음을 연 이었다. 내친 김에 '크리스마스의 밤을 함께 하자'라는 제의를 상쾌하게 콜~ 해주는 메이와 카쥬나를 6시 이 곳 오아시스에서 다시 만나기로 굳게 약속에 약속을 거듭하고 계산을 마쳤다. 두 홉 들이 작은 맥주가 9병과 셋의 음식을 합하니, 대략 700루피가 못 되는 돈, 당시 환률이 280원 이었으니 기껏 2만원 이다. 푼 돈에 뿜바이를 일 삼는 것은 사나이를 자부하는 자로써 당최 생각할 수도 없이 민망한 짓이여서 후딱 계산을 마치니, 그게 또 고맙다며 웃는다. 그 웃음에 '저녁엔 정말 맛있는 거 사줘야지' 다짐하며 거리에 나섰다. 할 일 없는 오후, 룰루랄라. 다시 툴툴거리는 스쿠터와 함께 놓여진 낯선 거리. 저녁 약속 까지의 4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지루하게 보내진 않을 요량으로 이 곳 저 곳을 쑤시고 다니는 일은 재삼 거론의 여지 없이 즐거웠다. 기분을 향긋하게 업 시키는 엷은 취기에 시원하게 헤쳐진 셔츠, 무엇보다 헬멧에서 자유로워 길다란 머리카락 널 뛰듯 칠렐레 팔렐레 휘날리니 더욱 좋았다. 근데 인도에는 음주단속이 있나? 라는 생각도 못한 체 실실 웃음 쪼개며. 약간의 음식과 가벼운 취기로 인해 업 그레이드 된 체력을 담보로 하여 다시금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돌아다니길 두 세 시간. 70루피 하는 기름 한 번 더 넣고, 안주나에 갓 도착한 여행자들 안내도 해주고, 현지인들과 담배도 나눠피며 노가리 풀다가, 첫 날에 만난 독일 커플을 만나 맥주 일병을 추가시키며 합석, 독일제 자동차와 카메라에 대한 잡 지식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레이번 선글라스가 근사하게 어울리는 190cm 의 사내와 르네 젤위거를 닮은 예쁜 처녀에게 제 특유의 립 서비스를 마음 껏 흩뿌리며. 삐삐하는 울림에 시계를 처다보니 벌써 다섯 시. 이제는 돌아가야 할 타이밍. 꽃띠 처녀들과 저녁 데이트가 약속되어 있는데, 낮짝이라도 한번 씻고 싸구려 스킨이라도 내처 발라야 할 것 아닌가. 단벌신사인 덕에 갈아 입을 옷도 없는 처지이니 더 더욱. 해변 가까운 곳에 분이기 좋은 방을 안내해주며, 제 방도 아닌데 제 방처럼 방 값을 기어이 깍아내리는 그녀가 고마워서 맥주는 내가 사려했것만, 선불로 계산을 치뤘다고 하니 이거 고마워서, 원. 스쿠터를 반납하고 돌아온 씨 호스 게스트 하우스 203호. 조악한 샤워기가 토해내는 물 맞으며 룰루랄라. 그 미적지근한 온도가 외려 포근하게 몸을 감싸는 듯 했다. 제법 피곤 할 법도 한 하루였것만 몸 어디에 에너자이져라도 부착 된 것일까. 마냥 신난다. 하하하. 사족. 넨장 할. 하루 동안의 일을 적는데, 오늘도 끝이 안 났다. 이런 추세로라면 한 달 애기 적는 데는 장편 소설 한 권 분량 나오겠네. 다음 편엔 필히 마무리 짖기로. 안 되면 말고.
2011-05-31 2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