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 Blue 봄바람에 날리던 향긋한 꽃가루 지상에 내려 앉은 금요일 저녁. 인연은 어둑 어둑한 지하 랜케이블을 통해 맺어진다. 외로운 솔로들에겐 잔인하게 화창한 날이라고 한 것은 남자였고, 고즈넉한 새벽 바다가 보고 싶다고 한 것은 여자였다. 한 시간 뒤 남자의 차가 여자의 오피스텔 앞에 서고, 네 시간 뒤 그들은 해변을 거닐고 있었다. 바다 바람이 차다며 어깨를 움츠렸던 것은 여자였고, 그럼 어디 들어가서 식사라도 하자고 한 것은 남자였다. 해변가에 웅장하게 늘어선 호텔들 사이길로 들어서자, 형형색색 국적 불명의 모텔 건물들이 가득했다. 맥도널드 옆 건물에 들어서며 뭘 먹고 싶냐고 물어 본 것은 남자였고, 바다에 왔으니 초밥이 낫겠다고 한 것은 여자였다. 3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 두 사람의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우동 국물에 몸이 따뜻해진다고 한 것은 여자였고, 소주 두 잔으로 볼이 붉어지냐며 웃은 것은 남자였다. 여자는 자신이 버린 옛남자 얘기를 했으며, 남자는 자신을 버린 옛여자 얘기를 했다. 오랜 만에 마시는 술이라 취한 것 같다고 한 것은 여자였고, 노래 몇 곡 부르고 나면 나아질 거라고 한 것은 남자였다. 6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 여자가 손에 들고 있던 겉옷을 떨어뜨렸고 남자가 그것을 주워들었다. 그립다고 외롭다고 잊지 못하겠다고 노래 부른 것은 남자였고, 그립다고 외롭다고 하지만 잊겠다고 노래 부른 것은 여자였다. 서로의 노래에 귀기울이며 한숨을 내쉬곤 했지만, 팡파레가 터질 때면 서로 손뼉을 주고받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고맙다고 한 것은 여자였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10층 버튼을 누른 것은 남자였다. 해변에 남은 것은 서울서 내려온 승용차 한 대였고, 그들이 몸을 담근 곳은 그랑 블루 모텔이었다.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파도는 모래를 쓸어내리고, 도시를 가로 질러 달려온 검은 강은 오늘 아침에도 바다가 된다. 2005. http://www.raysoda.com/Com/BoxPhoto/FView.aspx?f=S&u=8913&s=VD&l=51663&v=N
현린[玄潾]
2008-03-21 0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