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연(李正然) 묘역번호: 2-50 생 애: 1960.02.15 ~ 1980.05.27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M-16 총상 사망 장소: 전남도청 구내 기 타: 학생(전남사범대학교 2학년) 유 족: 이천균(부) “아버지, 우리는 잡초가 무서워 지금까지 방치해왔어요. 아버지도 방치하셨습니다. 이제 피를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잡초를 뽑아야 할 것 아닙니까.” 5월 18일부터 어머니의 가게가 있는 대인시장 안에까지 공수부대가 들어왔다. 집집마다 수색했고 청년들을 구타하고 끌고 갔다. 대학생인 자식의 안위가 걱정이 되었던 아버지는 정연이를 앉혀 놓고 집에 있으라고 타일러야 했다. 그랬더니 하는 소리가 잡초에 대한 이야기였다... 5월 22일, 광주는 잠깐 동안이지만 해방의 공간이 되었다. 도청 앞에서의 참혹한 학살을 뒤로 한 공수부대가 시 외곽으로 퇴각을 하고, 광주시민들은 죽음의 잔해를 수습하고 있었다. 정연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잘 지내는가 싶더니 25일 잠깐 밖에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24일은 정연의 할아버지의 제삿날이었다. 정연은 그날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할아버지의 제사나마 마지막으로 참석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가톨릭센터에 볼 일이 있으니 한 시간 후면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간 정연은 그대로 도청으로 들어갔고 수습위원으로 일했다. 그리고 5월 27일 새벽을 뚫고 진격해온 공수들의 총을 피하지 않았다. 온몸으로 역사의 오욕을 받아들이면서 숨져갔다... 정연이는 전남대학교 상업교육과를 다니다가 일을 당했다. 가끔씩 어머니를 찾아오는 그의 벗들은 모두 졸업 후에 고등학교에 배정되어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산다. 그 친구들을 볼 때마다 어머니는 더욱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착하기만 했던 아들은 죽어 저 세상 사람이 되었는데, 저들은 저렇게 행복하구나’하는 생각에 미치면, 먼저 떠난 아들이 몹쓸 불효자식이라는 억지스런 마음도 생겼다. 이제 다 부질없는 줄 안다. TV에서 본 아들의 모습도 다시는 볼 수 없고, 역사는 아직 학살자들을 심판할 마음이 없는지, 여전히 세상은 그대로다. 어머니는 바람도 없다. 아들이 말한 잡초가 아직 너무도 잘 자라고 있으므로 참으로 허망한 세월이었나 싶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 [Pyeongtaek] 03: 대추초등학교 2006년 가을운동회 http://www.raysoda.com/Com/BoxPhoto/FView.aspx?f=S&u=8913&s=VD&l=46749&v=N
2007-05-22 1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