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수(李康守) 묘역번호: 2-48 생 애: 1961.04.08 ~ 1980.05.27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M-16 총상 사망 장소: 전남도청 구내 기 타: 대입 재수생 유 족: 이운환(부) 금호고를 중퇴하여 검정고시에 합격한 이강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재수를 하고 있었다. 그는 5월 18일부터 시위에 참여했다. 평소성격이 활달한 그는 친구가 진압봉에 맞아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하고 시위에 참여한 것이다. 그는 시위에 참여하여 계엄군에 맞서 싸우는 동안에도 날마다 집에 전화를 했다. 도청 안에 있었던 이강수는 5월 26일 저녁에도 집에 전화를 했다. 그러나 그 잔인한 진압작전이 펼쳐진 5월 27일 새벽, 일단의 총성이 광주를 뒤흔들어 놓은 후 그는 행방불명이 되었다. 증명을 가지고 있으니 죽어도 확인이 가능할 거라고 농담으로 건네던 말이 유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들을 찾아 나선 아버지 이문환 씨는 며칠이 지난 후에야 보안대의 연락을 받았다. 지문조회를 통해 아들의 시신을 확인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6월 2일쯤 검찰청 8호 검사실로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아들을 확인할 수 없었다. 여러 차례의 우여곡절을 거친 후 경찰서에서 확인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는 망월동으로 갔다. 아들은 오른쪽 가슴에서 겨드랑이로 총알이 관통한 구멍이 뚫려 있고 심하게 부패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주검을 앞에 두고도 마음대로 울 수 없었다. 아들의 시신을 부패시킨 햇살만큼이나 따가운 고통이 아버지의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강수의 동생 광준이도 5월 27일 광대뼈에 총상을 입고 고통을 받고 있었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 [Pyeongtaek] 03: 대추초등학교 2006년 가을운동회 http://www.raysoda.com/Com/BoxPhoto/FView.aspx?f=S&u=8913&s=VD&l=46749&v=N
2007-05-18 1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