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선(柳英善) 묘역번호: 2-46 생 애: 1953.05.09 ~ 1980.05.27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M-16 총상 사망 장소: 전남도청 앞 기 타: 학생(전남대학교 공과대학 2학년) 유 족: 신애덕(형수) 21일, 도청에서 집단발포가 있었고 광주 전역에서 총성이 끊이지 않았다. 아침에 나갔던 막내아들이 노랗게 질린 얼굴로 들어섰다. “엄마! 도청에서 군인들이 막 총을 쏘는디 얼마나 잘 맞추는지 몰라. 한방에 사람 목이 떨어져버렸어. 어디서 쏘는지도 모르겠는디 탕 소리가 한번 들리고 나면 장갑차 위에 있는 사람의 목이 앞으로 굴러 떨어지대. 징헌 놈들이여. 삼촌은 Y에 있어. YMCA에. 내가 삼촌 자전거 타고 왔어.” 1980년 당시 류영선은 전남대 화학공학과 2학년에 다니다 휴학한 상태였다. 넷이나 되는 조카를 혼자 돌보는 형수에게 자신의 등록금까지 부담하게 할 수 없어 2학년 때 입대했었다. 그리고 제대해서 집에서 쉬고 있었다. 형수가 등록금을 마련했으니 복학할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는 어서 8월이 오고 복학 절차를 밟을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조카가 연행되고 연일 시위가 계속되었다. 아들의 처참한 시신에 어머니가 정신을 잃고, 남편이 나가서 돌아오지 않아 아내가 미친 듯이 시내를 쓸고 다니며 사라진 이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학생들이 몽둥이에 처참히 일그러졌다. 청년들이 생존을 위해 군인들의 군홧발에 무릎을 꿇는 비참한 광경이 그를 괴롭혔다... 26일 류영선은 집에 전화를 걸었다. 담배를 살 돈이 없다며 돈을 보내달라고 했다. 막내조카 식이 3천 원을 들고 삼촌을 만나러 왔다. 담배값은 핑계였고, 자신의 뜻을 가족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식아, 오늘 저녁에 군인들이 다시 쳐들어온단다. 아무래도 오늘 삼촌은 집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다. 삼촌 자전거 타고 집에 가라. 그리고 오늘은 절대로 시내에 나오지 말아라. 형이나 누나도 나오지 못하게 해라 알았지? 얼른 가라.” 동아일보에 기사가 났다. ‘폭도 마지막 저항자 17명’이라는 머릿기사 아래 5월 27일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아 죽음으로 저항했던 이들이 폭도라는 이름으로 명단에 올라있었다. 명단의 맨 끝에 ‘류영선’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폭도라고 했다. 사망했다는 그것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지는데 폭도라고 했다... 왼쪽 허벅지에 총에 맞은 자국이 있고, 이마 한가운데에 조그만 총구멍이 나 있었다. 허벅지에 총을 맞고 쓰러진 그에게 이마의 총상은 확인사살이었음이 분명했다. 이마를 관통당해 시신의 뒷머리가 없었다. 가지고 갔던 탈지면을 뒤통수에 대주었다. 손이 쑤욱 들어가는 시동생의 머리를 가슴에 안은 신애덕 씨는 오열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땅을 치는 통곡이 이어졌다. 묘지의 곳곳에서 그녀처럼 주저앉아 가는 이의 서러운 넋을 눈물로 보내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모습에 더욱 안타깝고 가엾기만 했다. 학교에 복학할 등록금이 그의 장례비가 되었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 [Pyeongtaek] 03: 대추초등학교 2006년 가을운동회 http://www.raysoda.com/Com/BoxPhoto/FView.aspx?f=S&u=8913&s=VD&l=46749&v=N
2007-05-15 1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