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필(安鐘必) 묘역번호: 2-41 생 애: 1964.05.28 ~ 1980.05.27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M-16 총상 사망 장소: 전남도청 구내 기 타: 학생(광주상업고등학교 1학년) 유 족: 이정임(모) “엄마, 학교에서 나오라네.” 학교에 안 가도 된다던 아이가 학교에서 다시 등교하란다고 교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책가방을 옆에 끼고 집을 나가는 뒷모습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시청 근처에서 식당을 하고 있었다. 종필이는 그렇게 한 마디 하고 불러 세울 틈도 없이 나가버렸다. 학교에 공부하러 간다는 아이는 저녁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밖으로 나가니 신역 쪽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시꺼멓게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더러 각목이 쥐어져있었다. 혹시 종필이가 있을까 눈을 크게 떠봤지만 교복 차림의 아이들은 다 똑같아 보였다. 그때 학생들 대열에서 툭 튀어나온 한 아이가 인도에 서 있는 어머니에게 모자를 안겨주고는 도로 뛰어가는 것이었다. 종필이었다... 24일경, 집 앞 산수오거리에 나섰다. 총을 메고 차에 올라탄 사람들이 차체를 두들기며 큰소리로 뭐라 외치고 있었다. 그들의 소리는 “김대중을 석방하라”, “계엄군은 물러가라”였다. 유심히 살피던 어머니 눈에 종필이가 보였다. “아야 종필아! 종필아 얼른 내려라. 얼른 내려!” “엄마, 나 도청 들어갔다가 금방 갈게. 얼른 집에 들어가 있어.” 계엄군이 물러나가고 며칠 동안 해방의 공간으로 활기를 더해가던 광주에 계엄군이 다시 진격해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6일 밤, 광주는 죽음을 기다리는 듯 암울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라도 도청을 지켜내겠다는 결의를 꺽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것이 비록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도청을 내주고 나올 수는 없었다... 집보다는 식당에서 주로 숙식을 해결하는 어머니를 돕겠다며 편안한 집을 놔두고 식당에서 불편한 잠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청소를 깨끗이 해놓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학교에 가던 종필이는 학교에서도 급우들의 기분을 밝게 해주던 아이였다. 친구들 간에 다툼이라도 일어날 것 같으면 종필이는 얼른 엉뚱한 말과 행동을 보여주어 분위기를 바꿔버렸다. 종필이 떠났을 때 찾아왔던 급우들은 “종필이가 웃기는 바람에 반에서 싸움을 할 수가 없었다”며 멋진 녀석의 죽음을 한탄했다. 밝고 구김이 없던 종필이의 성품은 집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형제들의 기분을 맑게 해주었다. TV에서나 책에서 보았던 캐릭터들을 이용해 넉살을 부리는 종필이는 누나가 교회에 간다고 준비하고 있으면 얼른 밖에 나가 누나의 구두를 깨끗이 닦아놓고 헤헤 웃었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 [Pyeongtaek] 03: 대추초등학교 2006년 가을운동회 http://www.raysoda.com/Com/BoxPhoto/FView.aspx?f=S&u=8913&s=VD&l=46749&v=N
2007-05-04 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