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준(朴甬準) 묘역번호: 2-38 생 애: 1956.07.09 ~ 1980.05.27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M-16 총상 사망 장소: 광주 YMCA 부근 기 타: 회사원(고아) 유 족: 김경천(기념사업 사무총장) 5.18 민중항쟁 당시 언론은 모든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했다. 광주 문제를 지역적인 문제로 국한시켜 무력진압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신군부의 음모였다. 이에 광주시민은 가두방송을 실시, 범민족 궐기대회 개최, 투사회보의 배포 등을 통해 전국민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였다. 계엄군의 잔인한 학살 만행과 사태의 진상을 시민에게 정확하게 알리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항쟁을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기 위한 노력은 선전활동으로 시작했다. 전남대학교의 탈춤반과 농악반, 연주반 출신이 만든 문화운동팀인 ‘광대’와 광천동 천주교회 ‘들불야학’의 학생과 강학들에 의해 궐기대회가 준비되고 투사회보가 제작 배포되었다. 박용준은 들불의 강학으로 학생들, 동료강학들과 함께 투사회보 팀에 가담하였다... 들불야학의 학생 대부분은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이었다.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 자신이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어리고 순진한 그들에게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는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들불야학에서는 교재를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기본적인 생활지식과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키울 수 있는 공부가 필요했다. 사람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정당하게 주장해야 할 자기의 몫을 알게 해주었다. 교사와 학생이지만 그들은 이미 형제였고 동지였다. 그들은 함께 나섰다... 26일 밤 투사회보 팀은 신문발행을 중단했다. 이제는 총을 들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그들은 미처 돌리지 못한 투사회보를 보듬고 비통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도청에서 총기를 지급받아온 이들은 YMCA에서 총을 들고 항전의 태세를 갖추었다... “우리의 피를 원한다면, 하나님 이 조그만 한 몸의 희생으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당신 앞에 내놓겠습니다. 저는 너무 가냘픈 존재입니다. 그리고 너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주님,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더 큰 고통과 번뇌와 시련을 듬뿍 주셔서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십시오. 고아라면 모두들 이를 갈겠지요. 내 형제들, 어린 동생들, 이렇게 죽는 나로 말미암아 두 겹, 세 겹의 고통과 멍에를 짊어지고 쓰레기로 태어나 쓰레기처럼 살 수밖에 별 도리가 없겠지요. 하나님, 어찌해야 좋겠습니까. 양심이 무엇입니까? 왜 이토록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십니까? 그렇다면 하겠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소서.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무거운 짐을 진 형제들을… 사랑과 관용을…” 총을 들고 어린 동생들을 위로하면서 그는 기도를 올렸다. 자신과 같은 멍에를 안고 살아가는 어리고 가엾은 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기도하는 것을 그는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갔다. 고아로서 겪었던 외로움과 서러움을 떠올리며, 다시는 자신과 같은 아픈 생을 사는 이가 없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한 몸 역사의 제단에 바쳐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세상의 짐을 그 작은 어깨에 싣고 떠났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
2007-04-20 1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