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용(朴成龍) 묘역번호: 2-37 생 애: 1963.01.26 ~ 1980.05.27 성 별: 남 출 생 지: 광주 사망 원인: M-16총상 사망 장소: 전남도청 구내 기 타: 학생(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3학년) 유 족: 김춘수(모) 성용이가 세상을 떠나고 밥보다는 술을 더 많이 드시며 당신 몸을 학대하시던 아버지는 1982년 어느 날, “아들 대신 당신 목숨을 내놓고 싶으시다”는 말씀을 되뇌시다 끝내 숨을 거두셨다. 성용이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는데, 그런데도 아버지는 성용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돌아오지 않을 아들이라면 당신이 찾아가겠다는 결심을 하신 게 분명하다... 서울 종합청사 앞에서 어머니는 플래카드를 몸에 두르고 누워버렸다. 남은 것은 오로지 강한 증오심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누워버린 어머니를 개처럼 끌고 경찰서에 밀어 넣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도대체 5.18이 무엇인지, 이 여인들이 거칠게 항거하는 이유를 그 경찰들은 알지 못했다. 도리어 반문했다. “어떻게 우리나라 군인들이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지요? 저희는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정말 거짓말 같습니다.” 최루탄이 옷으로 떨어져 아들을 위해 입은 하얀 한복이 불에 타고, 허벅지는 또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밥보다 많이 마신 최루탄 가루로 인해 위가 뒤틀려도 어머니는 멈출 수 없었다. 늘 지끈거리는 머릿속에서도 한 가지 선명한 생각은 폭도로 몰린 아들의 명예회복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밖에 되지 않은 아들이 군인의 총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그해 5월의 진실을 밝혀야 하는 의무로 어머니는 그 힘든 시련을 견뎠다... 성용이는 학동 파출소가 불타는 것을 보았다. 시민의 지팡이가 되어줘야 할 파출소가 불타야 하는 이유를 성용이는 보았다. 이제 겨우 고등학교 3학년이지만 그 아이는 분을 견디지 못했다. 공수부대가 함부로 사람을 때리고 함부로 죽이는 것을 보고 울분을 토해냈다... “광주역에서 공수부대가 사람들한테 총을 막 쏘았어요. 사람들이 총에 맞고, 곤봉에 맞아 죽었어라. 광주공원에 친구가 갔는데, 아무래도 그 친구도 죽은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하죠?” 그러더니, 자취하는 친구가 걱정이 된다면서 26일 잠깐 들러봐야겠다며 집을 나갔다. 그리고 성용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성용이는 그 길로 도청으로 들어간 것이다. 부상자들과 시신들이 가득한 도청 안에서 대학생 형과 누나들을 도우며 사상자들을 돌보았다. 형들은 성용이에게 위험하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나 성용이는 도청을 빠져 나오지 않았다.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죽음의 공포에 떨며 그 밤을 보냈다. 그리고 아름다운 한 떨기 꽃송이는 피지도 못하고 지고 말았다...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中에서 http://www.raysoda.com/hyunreen
2007-04-17 0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