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에는 오늘 받기로 한
복숭아를 가지러 석이 형의 집으로 갔다.
오랜만에 수족관을 보는데 물고기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얼마 전 새로 들인 빨간물고기 때문에
서로 스트레스를 받고 몇 놈 죽었다 한다.
어쨌냐 물으니, 변기에 넣고 흘려보냈다는데
물에서 와서 물로 갔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 수도 있겠다.
문제를 일으킨 빨간물고기는 수족관 바닥 돌무더기에
머리를 처박고 거짓말처럼 쥐죽은듯 있었지만,
제아무리 그래도 그 빨갛고 화려한 비늘과 날개는
와중에도 여전히 아름답다.
숨을래야 도저히 숨을 수가 없는 팔자여서 슬프기도 하겠다.
하늘거리는 새빨간 드레스는
인간들에게나 동물들에게나 치명적인가 보다.
여덟시쯤 되자 아까보다 비가 더 많이 내린다.
다행히도 형이 우산을 챙겨 준 덕에
비를 맞지않고 집으로 잘 왔다.
복숭아들 또한 무사했고.
다운 받은 '2015 환타스틱4'를 보며
어떻게든 재미와 흥미를 느껴보려 노력했고,
아무것도 아닌 하루가 되는 게 싫어 운동에 집중했고,
서술을 흡수하기 위해 침대에 누워 책에 집중했다.
그러다 말이 고파져 공책을 펴고 이것저것 적었다.
먼지처럼 쌓인 말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적었고,
어쩌다가 공손해졌고, 다시 건방져졌고,
몹시도 가벼웠다가, 조금 진지했다가,
담아둔 활자들이 이따금씩 주제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터지려 할 때면
오래도록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입을 한가득 오므렸다.
찌꺼기 같은 말들이, 곰팡내 나는 활자들이
63킬로그램 남짓한 몸뚱어리를 극단의 쪽으로 밀어냈다.
쓰다 보면 서글퍼지지만
이것들로 어스름을 만들어볼 생각은 없다.
방구석의 시끄러운 적막과
도통 끝을 맺지 못하는 말들 말고는 쓸 것도 없다.
늘 떠들지만 사실 늘 할 말이 없다.
얼마 전 601호에 새로 이사 온 커플들이
섹스를 카톡 마냥 참 시끄럽게도 한다.
소리를 묻어버릴 심산으로 복숭아를 씹어먹었다.
지린내 나는 밤이다.
축축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