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었다.
얼마 전 아이폰5를 이십에 팔았고,
그걸로 이것저것 가벼운 낭비를 했고,
쓸데없는 것들로 하여금 조금 들떴었고,
실망을 했다가 이내 잊었고, 책을 읽다가 말았고,
운동을 했다가 안 했다가,
열정적이었다가 냉소적이 되었다가
최근에는, 전쟁이 정말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라던지
우리가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 같은 것들로
잠시 고민도 했었다.
외부의 자극이 뜸하니 나는 점차 다른 방법들로
나를 들쑤시기 시작했다.
비타민이 과다복용이 되었을 때의 부작용이나,
파마머리가 어울릴지 안 어울릴지,
회사 바닥에 드러누워 죽은 매미의 삶을 괜히 기린다거나,
오후에 횡단보도의 그 남자의 버선양말이
굳이 로퍼 밖으로 삐져나와야만 했었는지 따위들로.
뻔뻔하지만, 이 요람을 견디지 못하는 내부에서
하다못해 이따금씩 잠결의 나를 훔쳐
행복했었던 과거의 일부라던가
애잔했었던 씬들의 짜맞춤들을 꿈과 기시감들로
마치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착각을 느끼게끔 도모하였지만,
그 효과는 실로 미미하였다.
있다면 잠시뿐이다.
자의식과잉으로 말미암아
이런 것들로 희로애락을 느껴보려 하기에는
나는 이미 너무 약을만큼 약아있었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로또를 사지 않는다.
답장하지 않는다.
상사에게 애쓰지 않는다.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정하지 않는다.
수용하지 않는다.
않는다, 또 않는다,
않고 않다 보니, 어느새 하루치의 시간을 다 써버렸다.
너무 늦었다.
나는 더 이상 크지 않는다.
쓸 데 없이 뒤만 보며 살았더니
이제는 회상할 것들도 없어서
쓰다 만 음절들이 거미줄처럼
청소기 튜브에 반쯤 걸려있다.
인간은 추억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만하다던데
나는 이제 내가 고리타분해졌을까 봐 걱정이다.
너무 이렇다 보니 정작 화장실에 들어올 때
가지고 왔어야 할 휴지는 잊었다.
아, 시발. 방까지 기어가야 하다니 억울해,
뭐 이런 식으로 시간은 또 흘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