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광. 환하던 시간의 총량을 의미한다
나는 급기야 겨울의 챔피언이 되었다
한 손에는 녹아내리는 엔트로피를
한 손에는 멈춰버린 벽시계를 들고
눈길들의 손가락 갈채를 받으며
두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지
no를 저으며
힘찬 결별,
no를 저으며
입술을 깨물며,
어두워질 때. 물방울의 정지
수군대는 어둠들이 비밀을 주고받는 동안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속마음을 훔치는데
사력을 다해 경기를 치렀던 때보다
오히려 이게 더 수고스럽다
희미해질 때까지,
이야기의 찌라시들이 관중석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벅차오르는 호흡
버텨낼 수 없는 폭설처럼
감당할 수 없던 폭언처럼
나의 창문을 묻기 위해
내 서랍의 인터뷰를 듣기 위해
링 위로 미끄러지며 들어오던 노을이 우뚝 선다
웬걸, 이제는 답도 없으니 질문도 없다
옛이야기로 자꾸만 나의 트렁크 안을 엿보는 것이
아마도 나는 영문을 모른 체
또 한 번 이 순간의 감정을 과장 당할 것 같다
민감하다는 건 이토록 배려가 배제된 동작이다
노을을 밀쳐냈다
반듯함을 내주고 낡음을 얻었다
,왜일까
이제는 답도 없으니 질문은 그만?
아니 아니 답을 그만
나는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내려가고 싶다
좀 더 어두워지기 전에 이 장르를 끝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주변이 필요해
주변을 구하기 위해서 시각의 기만이 절실했지
좀 더 허튼 풍경이 필요했어
"나는 누구보다 불행에 관해서는 열정적이었다."
화난 시절과
환한 시절의 간극에서
가만히 장내를 둘러보면
무지개 같은 실루엣이 얼핏 거리는데
진실은 무지 개 같다는 것
겨울의 라운드걸 앞에서 꼬리를 살랑거렸던 거
네, 그게 바로 접니다
밀담을 끝낸 어둠들이 주위로 몰려든다
소란스런 시절의 인터뷰도 끝날 기미다
어둠들은 이해보단 카타르시스를 요구했지
우리는 아무것도 주고받지 않으면서
정작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대체 자네 주변은 어디 있는 건가."
질문 같은 답변 좀 그만
진이 다 빠졌다
손을 절레절레 휘저으며
인터뷰를 마친다
no를 저으며
별의 삭제,
노을을 저으며
넘어지는 날들,
어떤 이름들이 묵음이 될 때. 물방울의 정지
화환들이 섬광에 타들어갔다
누군가 실수로 울렸는지 어디서 공이 울린다
이미 다 끝난 게임이야
내가 바로 이 장르의 3관왕이야!
나를 무시하며 또다시 울려대는 공,
소스라치게 놀라 항문을 긁적거렸다
공포가 깊어질수록 명랑해지는 죄의식
내가 저 공이었다면
제발 나를 좀 울리지 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저기는 공이 있어야 할 자리이고
게다가 공은 울려고 태어난 게 공인데 말이지
각자의 이름엔 고정된 명제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더 내리겠다 한다
쉼 없이 창틀을 달리기엔 차라리 좋겠어
그게 낫다
풍경의 회복을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