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鳥圖
조선시대 어휘사전인 <물보(物譜)>란 책을 보면 '제호로(提壺蘆)'란 새를
'후루룩피듁'새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예전 우리 문헌 속에서 제호로나 제호,
또는 직죽(稷粥), 호로록(葫蘆綠)'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우는 새는
바로 직박구리입니다. 집단 생활을 하며 시끄럽게 울어대는 이 새는
눈 뒤로 밤색의 반점이 있고, 배에서 꼬리 쪽으로 가면서 흰색 반점이
더 많아집니다.
피죽 피죽
쌀 적고 물은 많아 죽이 잘 익질 않네.
작년엔 큰물 지고 재작년엔 가뭄들어
세금도 내지 못해 농부들 통곡하네.
죽 먹어 배 곯아도 주림은 면하리니
피죽도 넉넉잖타 그대여 싫다 마오.
조선 중기 유명한 문인 장유(張維)의 <직죽>이란 작품입니다.
직(稷)은 곡식 중 '피'이니, 직죽이라 써 놓고 '피죽'으로 읽어야 합니다.
'호로록 피죽'은 이 새의 울음소리를 음차한 것인데, 멀건 피죽을 호로록 마시는
소리 같대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춘궁기에 주로 우는 이 새의 속성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지요.
자꾸만 '피죽 피죽' 하며 새가 울어 댑니다. 온 식구가 먹을 큰 솥에
한 웅큼의 쌀을 넣고 물을 가득 부어 죽을 끓이니 멀건 죽이 잘 풀어지질
않습니다. 가뭄 끝에 홍수 난다더니 먹고 살 길이 캄캄해진 농부들은
그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통곡할 길 밖에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나마 죽이라도 있어 굶어 죽기는 면하지 않느냐며, 너무 원망하지 말라고
피죽새는 계속해서 '피죽 피죽' 하며 운다는 것입니다.
옛 문집 속에 이 피죽새를 노래한 시는 적지 않게 나옵니다.
양경우의 작품에서도 피죽은 커녕 뜯어 먹을 풀도 없는데 피죽 피죽 하고
울어대니 듣는 심사가 더 사납다고 하면서, 그 와중에서도 고을 아전은
환곡 장부를 들고 와서 세금 독촉이 한창이라는 원망을 편 내용이 나옵니다.
새들의 울음소리는 이렇듯 그 새가 활동하는 계절적 특성과 맞물려
백성들의 삶의 애환이 함께 녹아들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너무 흔해서였을까요, 아니면 외관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아서였을까요?
옛 그림 속에는 직박구리를 그린 것이 잘 보이지 않는군요.
-야생조류 동호회 jung0739 (정민)(http://jmsam.interpia98.net) 님의 글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