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나는 눈이 싫어요.
밤마다 나의 귀를 긁어대고 머릿속을 찍어대는 저 눈을 치워주세요.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이제 나의 뒤통수엔 내가 없어요.
하루하루 체크했던 거울 속의 지리들은 결국 눈이 무거워, 다짐 보다 빠른 속력으로 깨져버렸고,
언제나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서 같은 버스를 탔는데 저 눈이 나를 지워버려요.
덕분에 나는 하루가 다 가기도 전에 그만 길을 잃었죠.
아- 어머니가 이걸 봤어햐 했는데.
지팡이를 던져대는 늙은이들, 핫팩을 들고 달아나는 밀렵꾼과
호시탐탐 변명을 발명해대는 예술가들의 낯선 정거장을.
그들 중의 한 무리는 내게 와서 말했죠.
"우리는 굶어죽어도 예술을 할 거야."
김밥을 쩝쩝거리면서 말이에요.
알아요? 이제 더 이상 그 곳에 우리라는 건 살지않아요.
어디선가 꼭 한 번 마주앉았을 법한 당신들만이 있을 뿐
아무리 지도를 찾아봐도 그곳은 없어요.
내가 흘린 잔돈들은 오래전에 버린 엽서들.
내가 버린 노래들은 오래전에 놓친 단어들, 빛나던 샴쌍둥이 아침
그해 십 이월에 내게 안겼던 재희를 당신은 아마 모를 거에요. 달리기의 여왕이었죠.
어찌나 빠르던지 나는 그녀를 잡을 수가 없었어요. 도저히.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라는 우리 안에 갇힌 우리 없는 우리들인 걸까요?
"학교를 갈 땐 광이 나는 구두를 신고 가야하는 거란다. 부끄러운 새끼야."라고 내게 말했던 그 분은
아직도 불투명한 비닐 속에서 허리를 굽히고 계신가요?
나는 그저 얌전히 버스를 타고싶을 뿐이에요.
끌려가는 청년들과 쑈를 하는 소녀들의 풍경도 이제 껴안을게요.
질문 대신 대답부터 할 줄 아는 엉터리가 되라면 되겠어요.
점쟁이가 말했던 퉁퉁 튀어다닐 다리도 더 이상은 없는걸요.
언젠가 당신의 손가락에 꽃문양 우산이 펴질 때 나의 등에 파란 도장을 찍어주세요.
그땐 내가 기꺼이 당신들의 악습 속으로 스며들게요.
어머니, 이제 저 눈을 치워주세요.
아직도 밤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