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간간히 귀뚜라미가 울어댔지만
그땐 아이의 적막이 너무나 요란하여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아이는 방 안의 테잎들을 딱 한 번씩만 듣고는
모조리 던져버리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래야 너희들이 내 구덩이 밑에
뭐가 있는지 찾아헤멜테지.
이 뱀들이 보이느냐
나는 이 계절이 끝나면 머리를 빨갛게 물들일 거다.
몇 년후 아이는 빠알갛게
대가리를 물들이고 나타났지만
동네사람들은 그를 보며 손가락질 해댔다.
그때부터 나는 탄산 먹어요 탄산.
지칠 때까지 목이 메일 때까지
어른이 될때까지
"얘, 할미 등에 파스 좀 붙이다오.
하늘이 무너져 등이 무겁구나야."
"더러워요 할머니. 축 늘어진 살들이 꼭 생선비늘 같잖아."
"좆같은 새끼 키워주믄 뭐하노. 니 애미한테 가."
그날 모두가 잠든 밤에 문에 걸어놓은 방울이 딸랑거렸고
칼을 들고 일어선 건 할미였다.
아이는 비겁하게 울어버렸다.
나는 탄산 먹어요 탄산
지칠 때까지 목이 메일때까지
어른이 될 때까지
아이를 사랑해줬던 한 여자의 입에선 자주 본드냄새가 났었다.
그녀의 냄새가 방문을 타고 넘어 복도까지 넘어 간 적도 있었다.
그런 날은 그녀가 노래를 하는 날이다.
"야 저것 봐. 불빛이 춤을 추잖아. 일어나! 일어나!"
둘은 어지러워질 때까지 섹스를 했고
얼마 후 그녀는 아이 방의 벽에 연분홍 립스틱으로 메모를 남기고 떠났다.
그짓말하는 니가 너무 미워.
나는 더 이상 본드걸로 살지않을테야-
노래는 끝났고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의 뾰족구두 위에서 휘청거렸던 건 순전히 내 실수였어.
너의 오른쪽 귀에선 토끼향이 나.
나는 이제 어른들의 세계에서 취할거야.
탄산 먹어요 탄산.
지칠 때까지 목이 메일 때까지
어른이 될 때까지
아이는 꿈을 꾸었다.
깜깜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오래된 바람이 머리를 만졌고
달빛은 버려진 안개꽃 위를 참방거렸다.
아이는 어릴 적 귀뚜라미 울었던 곳으로 찾아가 부탁을 했다.
"얘, 내 등에 파스 좀 붙여다오.
내 꿈이 무너져 등이 무겁구나."
귀뚜라미는 아이의 등에 파스 대신
찢어진 커다란 달력 한 장을 붙여주었다.
꿈에서 깼을 땐
얼마 전 화재가 나서 여섯명이 죽었다던
고양시의 버스터미널이었다.
어디로 가지? 어디로 갈까?
내 코밑의 수염은 대체 어느 방향에서 자라날 수 있을까.
가만히 허공을 주시하는 아이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가만보니 눈에서 똥 같은 게 흐른다.
눈물인가?
똥이네
탄산 먹어요 탄산.
미칠 때까지 목이 잠길 때까지
어른이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