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갔다. 그 전에 서울에 가본 횟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었다. 정신없는 입학식이 끝나고 가족들이 떠나자 타향살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첫 한해 동안에는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서울은 시끄럽고 복잡하고 매정한 곳이라 어리숙한 나에게는 감당이 되지 않는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와 자취방 주변에서 1년이 그렇게 지나갔다.
처음 맞이한 겨울방학 때, 과외를 해서 돈을 벌었고 니콘에서 나오는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샀다. 그 카메라는 바람이었다. 나는 그 바람에 이끌려 신림동을 벗어났다. 처음 가본 곳은 덕수궁이었다. 중학교 때 꿈이 역사학도였기 때문 이기도 하고 마침 듣던 교양수업이 조선의 문화에 관한 것이라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향하게 되었다. 그때의 풍경이 아직도 기억난다. 화창한 봄날씨였는데도 높은 빌딩들 사이에 내려 앉은 전각들이 애처로웠다. 이후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경복궁, 종묘, 원구단, 사직단을 가보며 100년 전에 망해버린 나라의 흔적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 답사를 3년 했을까 문득 회의가 들었다. 그 풍경은 과거의 화석이고 죽어서 되돌아 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 바람은 한강으로 나를 이끌었다.
한강은 아직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강을 건너 서울을 보는 풍경이 좋다. 도심 안에서 보는 빌딩숲은 갑갑하고 숨막힌다. 그리고 시끄럽다. 하지만 한강에 서서 작은 건물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으면, 억압적이었던 건물들이 장난감집처럼 보이고 시끄러운 소음은 바람에 날려 고요하다. 이로서 마음이 평온을 얻는다. 상처를 입은 짐승들이 몸을 피하듯, 서울 사람들이 한강을 찾는 이유도 그러할 것이다.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강 건너의 풍경을 바라본다.
몇장 찍는 둥 마는 둥 했더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다. 버스를 타고 저 다리를 지나서 다시 집으로, 저 건물들 사이로 돌아가야 한다. 집은 강가에 있지 않고 저 건물들 사이에 있다. 그것이 서울 사람들의 비극이고 역설일테다.
2010. 7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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