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어제는 비가 내렸나, 나는 아마 우산을 두고 왔을거야. 우리가 우산을 두고 가기로 한 날, 나는 다음 비가 내리기 전 까지 그 우산은 맨 끝 캐비넷에 계속 들어있을 줄 알았지 어제는 아마 그 하루 전 날 회식을 한다는 통보를 받고 약속이 있든 없든 등갈비를 뜯으러 갔었지 그러니 말야, 자정이 넘은 시간이니 어제가 아니라 그제란 말이지 그러니, 이 새벽시간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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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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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움을 호소하며 회식자리에서 나온 나는, 그의 카메라를 오른쪽 어깨에 메고 불꺼진 가게 앞 플라스틱 의자에서 그를 기다렸다. 건물 끝에서 그가 히죽히죽 웃으며 달려온다. 자신을 잡으러 올 거라면서, 빨리 도망쳐야한다고 말하며 빠른 걸음으로 걷는데, 걸으며 계속 웃는다. 나는 그런 모습이 웃겨서 따라 웃었다. 깔깔깔 거리는 웃음이 퍼졌다. 왼쪽과 오른쪽이 헷갈리는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몰라 어디로 가야해요? 물었고, 그는 버스 정류장. 이라고 말했다. 버스 정류장은 대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 거지? 그는 손으로 방향을 지시했다. 왼쪽과 오른쪽이 헷갈리는 사람이 나 말고도 있다니, 우린 왼쪽을 오른쪽이라 말하고 오른쪽을 왼쪽이라 말해도 다 알아 들을 수 있었다. 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왔다. 술 냄새를 없애고 집에 가야지, 라고 말하는 그에게 그럼 우리 편의점 커피를 마실까요? 라고 말했고 그는 그럼 여기 앞에서 커피 마셔요 라고 말했다. 우린 처음의 티타임 장소였던 곳에 들어가 달달한 것을 주문했다. 차갑고 단 거. 내가 그렇게 말하니 그는 그렇다면 비엔나. 차가운 거니까 아이스 비엔나. 나는 차가운 핫 쵸코 마셔야지. 한번씩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니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아이스 쵸코에는 휘핑크림과 쵸코시럽이, 아이스비엔나 커피에는 높은 휘핑 크림이 얹어져있었다. 하지만 내 커피는 달지 않았다. 이거 하나도 안 달아. 왜, 이거 시켰어요? 라고 하자 그는 비엔나라서 왠지. 비엔나는 달 것 같아서 라고 말했다. 비엔나, 비엔나..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우린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고 웃었다. 그러니까 비엔나 하니까 생각나는 건, 비엔나 소세지였는데. 그런데, 비엔나 소세지가 단 맛이 나나? 아니 왠지 비엔나 소세지가 떠올라서 달 것 같기도 했는데. 라고 말한다. 나는 휘핑크림을 스트로우로 떠 먹으며 (그는 이미 두개의 스트로우를 망쳤다. 거꾸로 담궈 놓고 뺀 흔적이 있는 스트로우 두 개) 맛있어 했다.
아, 큰일 났다. 어쩌지. 하며 그는 웃는다. 아 어쩌지. 나는 조금 마음이 상한 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운하긴 하지만 괜찮았다. 괜찮긴 하지만 조금 서운한 것도 사실이라 그냥 미안해하게 뒀다. 그리고 다른 예약을 잡았다. 어찌 될지 모르지만, 서로가 알고 있으므로 어찌되어도 상관없다 생각이 들었다. 10:15분에 헤어졌고, 그는 버스정류장에서 바로 버스에 올라탔다. 집에 도착하니 10:30분이 안 되었다. 동생은 아직 영등포라고 했다. 그는 나와 함께 동생 걱정을 해줬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 잘 챙겨야 한다고 했고, 동생들이 원래 누나나 오빠들을 속상하게 하지만 그래도 예쁘다고 말한다. 이궁, 걱정되게 라고 말하는게 꼭 내가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인다. 발톱이 깨졌다는 말에는 또 에궁 아프겠다, 라고 한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중이었고, 집에 도착한 그는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어서 사러 나가는 중이었다.
졸리다.
자야겠네,
w_20110524
p_201108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