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오지 말아요, 위험해
나는 길을 잃은 적이 있었고, 우린 사랑을 한 적이 있었다.
- 전화 끊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곧, 갈게.
- 지금? 지금 와줄거에요? 여긴 계곡, 저 멀리 사람 사는 것 같은 불빛이 보여요. 사람이 살고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 집이거나 가게이거나 혹은 버스 정류장이거나, 하지만 길가도 아니고 도로도 아니고 여긴 산골, 짜기. 계곡이 흐르고 있어요.
- 높이가 어느정도 되죠? 그러니까 내 말은 지상으로부터의 높이.
- 높지 않아요. 그렇다고 낮지도 않고. 나는 낡은 정자로 부터 조금 멀어졌어요. 그러니까 낡은 정자를 뒤로 하고, 아래로 산 아래로 내려 왔어요 30분에서 1시간 정도 멀어진 것 같은데 내가 아래로만 내려왔을까요, 아니면
- 아니면, 내려오는 길에 올라갔다가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지요.
- 그러니까 나는, 계곡 옆에 있었어요 계속, 물길을 따라 걷고 있어요. 지금 내게 온다는 말인가요?
- 응, 그러니 전화를 끊고라도 무서워 말고 나를 기다려요. 내가 갈테니, 그 즈음이 어디인지 알고 있으니 절대로 그곳을 벗어나지 말아요. 알았죠?
- 응, 혼자 오지 말아요 위험해.
어스름한 산길, 검은 나무 검은 새 검은 흙 그리고 검은 밤과 냄새들이 저녁밥을 짓고있고, 나는 한 가운데 서서 하늘 한 가운데를 점찍어 두고 그 안에 별들 가득히 뿌려 넣어 그러니 내 말을 들어봐요, 나는 전혀 무섭거나 두렵지 않아 오히려 나의 밤, 이 산속의 어두움이 편안한 걸 아무도 나를 볼 수 없지만 나는 모두를 볼 수 있지 그러니까 말야 내 검은 속은 누구라도 알 수 없을거야, 라고 말해놓고도 그 검은 속 들키기 위해 일부러 애쓰고 있는데도 알아주지 않는 척, 알아차리지 못한 척 하고 있는 장님의 그들을 보며 저런, 장모가 어디를 가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 같구먼. 자네 장모가 지금 어디 다리를 건너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하고 물어오면, 글쎄요 하고 한쪽 눈을 감고 한쪽 눈을 뜨고 오른쪽 귀를 접고 왼쪽 코를 하나 막고 병원엘 가야겠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대장안에 꽉 들어찬 노폐물을 치워버리는 일이지, 자 관장약을 항문에 넣어보겠나 그 막연한 고통이 당신에게 어떤 희열을 주게 될지 나는 미리 말하지 않겠네 하지만 단 한번이라도 응급실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수도 있지 단, 내가 죽어나가는 상황을 그려야하고 내 간이 침대가 붉게 물들어 있어야 하며 내 어머니가 나를 못알아 볼 정도로 정신이 혼미하게 나가 있어야 알 수 있는 감정이라네. 그러니 아마 당신은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나는 엄마 엄마 엄마를 부르며 그 수많은 엄마들에게 엄마와 엄마를 불러대며 수십, 수백의 엄마들에게 수천 수만의 눈빛을 받으며 내 엄마와의 조우를 상상하곤 한다. 나는 나의 어머니를 언제 만날 수 있을까, 하고 그것은 금방이어도 좋고 금방이 아니어도 좋다 내가 당장 사라진다해도 좋고 그 사라짐이 곧 어디를 간다거나 원래 있던 곳으로 향한다거나 등등등등의 내가 가본적 없는 알 수 없는 가봤다는 사람이 정상같고 죽어 본 적이 있다는 말이 오히려 사실 같은 요즘 시대에, 나는 다시금 살고 싶어졌고 사랑 받고 싶어졌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았을지라도, 나는 당신을 사랑했노라
라고 내가 말하고, 당신이 말하니 우린 서로 사랑한 게 맞다
안아줘, 업어줘, 재워줘
w_20110423
p_2009 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