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후지컬러로 필름을 바꿨다. 소방관들이 불을 향해 물을 내뿜었다. 나이 든 소방관의
클로즈업된 얼굴을 아주 멋지게 찍을 수 있었다. 나이 든 소방관의 굳은 얼굴은 화염에 붉
게 물들었고, 화염을 바라보는 눈길에는 놀라고 당황한 기색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미처 30분도 지나지 않아 필름 아홉 롤을 썼다. 불을 끄는 경비행기는 이제 세 대로 늘었고,
소방차 네 대가 미친 듯이 물을 뿜었다. 열기가 심해 나는 땀에 흠뻑 젖어들었다. 그래도 나
는 사진 찍기를 멈추지 않았다. 앤과 내가 죽음에서 간신히 벗어났다는 급박한 상황에 위험
까지 더해졌다. 그런 기분이 사진으로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종군 사진가가 왜 늘 전장
으로 달려가는지 이제야 이해됐다. 죽음에 가까이 가보고 나서야 목전에 임박한 위험이 사
진가에게는 더할 수 없이 매력적인 상황이란 걸 알게 되는 것이다. 사진가는 모든 장면을
뷰파인더를 통해 보기 때문에 위험에는 어느 정도 면역이 된다. 카메라가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카메라 뒤에 있으면 어떤 피해도 입지 않을 듯 느껴진다. 카메라 덕분에 위기 상
황에 대한 면책특권을 얻는 것이다.
- Douglas Kennedy <The Big Pic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