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랑.쫄.랑.노.란.비.옷.입.은.아.이.
어떤 날이면,
할머니는 어린 나를 앞에 두고
막걸리 한 잔에 <으악새 슬피우는..>노랫말을 흥얼거리곤 하셨다.
그런 날이면 고단한 몸이 퉁퉁 부으셔서 우리 손녀 여기저기 주물러라 주문하셨지만
나는 30초 주무르다 말고 할머니 손에 코를 박곤 킁킁킁~
그래 우리 할머니 손에서는 항상 과일냄새가 났었다.
만약 할머니가 과일장사가 아닌 생선장사를 하셨다면
나는 할머니 손에 코를 박았을까...
속 정 깊은 노여사님..
나의 할머니는 그 세월을 차곡차곡 주름에 감춰놓고 무슨 생각으로 지금의 팔순을 맞이했을까?
아마도.. 흐르는 시간 뒤, 저 만치 비켜나 있으시리라.
그래..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의 흐름에서 저 만치 비켜나는 듯 하다.
전에 나의 시간이 수직구조로 날을 세우고 있었다면
내 나이 서른 셋.
이제 남은 시간들은 수평구조로 밀도를 채우고 싶다.
그런 나이듦의 과정이 나는 좋다..
저 사진처럼 깨알같은 소품들을 다 담을 수있는.
여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서점가엔 항상 성공에 관련된 서적들이 넘쳐나고,
나 역시 성공에 대한 열망으로 밤낮없이 열정을 꽃피운 적 있었건만.
한 사람의 아내가 되고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니
한 번 뿐인 나의 삶, 나의 하나뿐인 도화지 속에
놓치고 있던 소중한 그림들을 참하게 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남들이 보기엔 좋으나 정작 나는 몽롱한 그런 그림이 아닌, 오롯이 흔들림 없이 깨어있는 내 그림 말이다.
파란우산, 주차기본1000원,갈라진벽, 틈,우산씌워주는할머니,파란꽃물주전자,샷시뒤돗자리, 멍때리는흰둥이
쫄.랑.쫄.랑.노.란.비.옷.입.은.아.이.
그리고 그 아이의 꿈..
지금 난 저 사진 한 장으로 동심에 빠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