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덕혜옹주의 비 " 이 왕가 종백위가 ?결혼봉축기념비 " -대마지청장 적목진거 배서 19세기 말 조선이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강제병합을 국제적으로 규탄키 위해 헤이그 밀사파견과 일본에 대응하기 위해 독립군을 비밀리에 추진하던 고종황제는 일제에 의해 독살당하고 맙니다. 이어 덕혜옹주는 강제로 일본 연수원에 끌려가 일본어 수학을 받아야만 했고,, 그 수학중 자신 또한 독살의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항상 보온병을 가지고 다녔다 합니다. 그러던 중 덕혜옹의 어머니(고종황제의 후궁) 또한 서거합니다. 덕수궁으로 돌아온 덕혜옹주는 일제가 한국의 장례의식절차도 폐기를 시켜 비단복으로 상을 치르게 하고 긴급히 일본으로 다시 돌려보냅니다. 아...얼마나 분통이 터지는 상황인지를.. 평소에도 입이 무거웠던 덕혜옹은 이젠 더이상 의지할 곳이 없어 세상과 끈을 놓으려 합니다.. 이 시기 일제는 덕혜옹을 미친것으로 간주해 버리고,, 대마도 군주의 백작과 도쿄에서 강제결혼을 시켜버려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사이에 딸아이가 출생하고, 덕혜옹의 병은 깊어가는데.. 해방후 이 일본남편은 덕혜옹을 정신병원에 가둬버립니다. 때아닌 외동딸도 주체성의 혼돈과 함께 자살을 해버려 그 충격은 배가 되었습니다. 그 일본남편은 이혼을 해버리고, 다시 재혼을 해버렸습니다. 긴 세월 감방과도 같은 정신병원에서 얼마나 하늘을 보고 설움을 토했을까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덕혜옹은 마지막 생을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습니다. 한국의 그 시절 60년대는 정치적, 경제적으로도 힘든 시기였고, 환영받지 못한채.. 한국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합니다.. 당시 일제감정기시 대마도에 징용으로 끌려갔던 우리 선조들이 처량한 덕혜옹을 보고서, 기리기 위해 비를 세웠으나.. 그 비는 철거해 버리고.. 언제 철거했는지는 모릅니다만.. 2000년 초반에 위의 서문으로 다시 세워진 것이 바로 보이는 비라 합니다. 마음은 이전에 새겨진 비를 보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던 게 더 마음이 져려옵니다.. 저 가운데 놓인 조화만이 덕혜옹을 달랜다니 참 쓸쓸할 뿐입니다.
free-road`s
2013-07-12 0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