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는 죽이거나(사냥꾼), 아니면 죽임을 당하거나(사냥감) 둘 중의 하나다.
용케도 사냥꾼이 되었다고 해도 악몽은 종결되지 않는다. 사냥은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계속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계속 사냥에 참여하는 삶이 또다른 유토피아라면, 그것은 끝이 없는 유토피아다. 사
실 정통적인 기준으로 보면 기괴한 유토피아다. 본래 유토피아는 고생이 끝날 것이라는 약속으로 사
람들을 끌어당겼다. 이에 반해 사냥꾼의 유토피아는 고생이 결코 끝나지 않는 꿈이다. (지그문트 바
우만)"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사회다. 눈을 크게 뜨고 보라. 세계는 지옥의 유토
피아거나 유토피아의 지옥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와 투쟁이다. 지상 35미터 높이의
85호 크레인에 올라 180일째 '고공농성'을 벌인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은 무엇과 싸웠던가? 그들
은 바로 지옥을 지옥이 아니라고 우기고, 이 지옥을 현실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권력과 권력에서
오는 "온갖 종류의 압력" 들과 싸운 것이다.
- 장석주 <철학자의 사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