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고 섹스하다 죽는다. 섹스는 태어남과 죽음의 가운데에 있다. 태어남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무렵 한생의 섹스가 시작되고 일생의 섹스가 끝나갈 무렵 죽음이라는 사건에
대비한다. 태어남과 죽음은 인간의 소관이 아니라서, 인간은 태어남의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없고 죽음의 순간으로 미리 달려갈 수 없다. 오로지 섹스만이 인간의 소관이다.
인간은 인간의 소관인 섹스를 통해, 인간의 소관이 아닌 태어남과 죽음에 대해 간신히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때 섹스는, 키냐르 식으로 말해 태어남의 복습이고 (자신을 만들어낸 행위를
떠올리지 않는 것이라면 어떤 이미지도 우리에게 충격을 주지 못한다 - 파스칼 키냐르 <섹스
와 공포>) 바타유 식으로 말해 죽음의 예습이다. (죽음은 현혹적이다. 그런데 에로티즘을 지
배하는 것 역시 다름 아닌 그러한 현혹이다 - 조르주 바타유 <에로티즘>) 우리가 말할 수 있
는 것은 섹스뿐이다.
-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