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거리에서 불행한 여자 옆을 지나다가 클로이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저 여자처럼 얼굴에 커다란 점이 있었어도 나를 사랑했을 것 같아?" 그 질
문에는 "그렇다" 는 대답에 대한 갈망이 숨어 있다. 몸이라는 세속적인 표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비참하게도 어떻게 바꾸어볼 수 없는 표면보다 높은 곳
에 사랑을 놓아달라는 요구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없이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
하는 것은 너의 눈 색깔이나 다리의 길이나 수표책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네 영혼
의 깊은 곳의 너 자신 때문이다. 연인이 외적 자산을 벗어버린 나를 좋아하고, 무
엇을 이루었느냐에 관계없이 우리 존재의 본질을 평가해주고, 흔히 부모와 자식
사이에 존재한다고 말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되풀이해주기를 바라는 갈망이다.
진정한 자아는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다. 그 외에 우리의 이마에 점이 생
긴다든가, 나이 때문에 몸이 시든다든가, 불황 때문에 파산을 한다든가 하는 식으
로 우리의 표면에 불과한 것에 손상을 주는 사고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제해 주
어야 한다. 설사 우리가 아름답고 부유하다고 해도, 이런 것들 때문에 사랑받고
싶어해서는 안된다. 우리에게서 그것이 사라지면 사랑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이 내 얼굴보다는 머리를 칭찬해주기 바란다. 그러나 꼭 얼굴을 칭찬해
야겠다면 (정적이고 피부조직에 기초를 둔) 코보다는 (운동신경과 근육이 통제하
는) 미소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해주기 바란다.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Alain de Bo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