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돌아오자, 에리코와는 한동안 만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는 섹스도 어지간히 많이 해서 신체 친화력이 기묘하게 높아진 상태였고, 주말을 이용한 짧은 여행이라고는 해도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함께 보냈다는 경험은 앞으로 이어질 그녀와 나의 관계에 뭔가 긴요한 의미를 부여할 가능성이 컸다. 에리코에게 내 존재는 보다 확실한 것이 되었을 테고, 내게도 에리코는 한층 또렷한 존재가 되었다.
그것은 결코 불쾌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쯤에서 에리코와의 접촉을 당분간 중단하는 쪽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다시 한 번 에리코를 아직 잘 모르는 사람으로 해두고 싶었다.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그 다음에는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상태로 남겨두는 게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읽고 싶지 않고, 억지로 읽게 되면 따분하고 싫증이 난다. 타인과의 사귐도 그것과 비슷하다.
오래전에, 사귀던 여자에게 그런 말을 했더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책 같은 게 아니고,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재미있는 책도 있어. 그래도 인간을 굳이 책에 비유한다면 그건 끝이 없는 길고 긴 이야기책이라고 생각해."
그녀는 또 이렇게도 말했다.
"원래 인간이라는 책에는 판독 불가능한 문자며 암호 같은 게 수없이 많아서 아무리 많이 읽어도 완벽하게는 이해할 수 없는 거야. 기왕 비유할 거라면, 인간이란 저마다 수십만 종류의 소리가 뒤엉킨 음악 같은 거라고 생각해. 들을 때마다 매번 인상이 바뀌는, 아마도 그건 정말 복잡한 음악일 거야."
그때도 나는 며칠 동안 그녀가 한 말을 이해하려고 진지하게 노력해 보았다. 하지만 나로서는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재미있는 책이라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끝이 없는 이야기 따위는 더더욱 그렇다. 하물며 인간을 음악에 비유하다니, 대충 그럴싸하게 둘러대는 데도 정도라는 게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이렇게 생각했다.
만일 몇 번이고 똑같은 책을 읽고 싶다면, 읽은 내용은 죄다 잊어버리는 수밖에 없는 거라고. 나는 에리코의 몸을 알았다. 옛 남자에 대해서도 알았다. 그 외의 일도 상당히 많이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좀 잊어버리도록 해야지.
- <내 안의 망가지지 않은> 白石 一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