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부지 성주 참외 / 김병해 낙동강 긴 강줄기 두 자락에 감겨 읍내까지 발 들여놓지 못하는 충혈된 서쪽 하늘 끝자리 경북 성주군 선남면 도흥 방천걸에 마사토 흙빛 닮은 참농군 외삼촌이 산다 대대로 허리 접던 보릿고개 넘기며 팔남매 자식농사 거뜬히 일궈낸 외할머니 그 귀한 첫 아들, 노판근*이 산다 베트콩 득실대던 월남땅 떠난 후론 외할머니 눈물 징하게도 후려 뽑더니만 파월용사 훈장, 고엽제 후유증에 녹슬고 있다더니 고소득 특용작물 참외 농사 늘그막에 접힌 허리 좀 펼라나 싶더니만 지난핸 무던히 속 태우던 자식의 늦장가로 절은 위장 소주 털어 부을 일 없을라나 싶더니만 아, 글쎄 헤프게 사내 웃음 흘리신다 싶더니만 갑자기 부르신단다 울엄니 외할머니 오래전에 불려 간 저, 저승에서 한겨울에도 장질부사 걸린다는 비닐하우스 그저께 참외 모종 접붙이고선 머잖아 기운 차린 넝쿨 새순 제대로 함 뻗어 보려는데 얼른 오란다 황천에서 그 검은 갓 쓴 영감이 눈자위 그늘 어스름히 짙은 그 살생부가 해마다 넉걷이 끝날 무렵, 작은 씨알 골라 맛이나 보라시며 매양 친지들 앞앞이 택배로 보내온 온정의 당도 높던 성주 참외, 동네 마트 가면 쉬 사 먹을 수 있으니 그러지 마시래도 이눔들 너들 함씩 들르기만해도 택배빈 안들낀데 시던 그 참외 맛 올핸 얻어 먹기 어려울까 틀림없이 이번엔 그 후한 인정 받으러 직접 꼭 찾아 뵐테니 일어나세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어험 헛기침 앞세우고 일어나세요 성주 참외 힘차게 넝쿨손 뻗어 세우듯 * 2010년 담도암 발병후 투병중 그 해 8월 31일 세상을 떠났다. 이 시는 그의 발병 직후 쓴 것임. - <문학예술> 제4집, 2010년. 게재. .................................................................................................................................... 큰아부지의 조카.. 그러니까 나에겐 고종사촌 형님이시다. 큰아부지께서 큰병을 얻으셨을때 쓴 시라고 한다. 최근 형님이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이 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시로 다시 태어나신 큰아부지를 뵈니 간만에 뜨거운 서러움이 몰려 왔다. 작년봄에 떠나신 어머님묘 근처에 튤립을 돌려 심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형이 "우리 아부지묘에도 심구로 몇개 도.." 그렇게 몇구 건낸 튤립이 큰아부지 비석앞에 멋스럽게 피었다. 뒷짐지고 큰아부지묘와 우리엄마묘 근처를 둘러보는 형의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큰아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