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즈음 시작한 영어수업에서 나는 "I am a Japanese" 라는 문장을 배웠다. 우리 분단 맨 앞자리
학생부터 순서대로 선생님 입 모양을 흉내내면서 "아이 아무 아 쟈빠니-즈" 하며 큰 목소리로 반복
했다. 차례라 점점 가까워 올수록 긴장도 점점 고조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순서가 되었다. 나는
입을 꼭 다문 채 단 한 마디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교실 안의 모든 시선을 온몸으로 감지했다.
"너 왜 그래? 간단한 문장이잖아?"
선생님의 독촉을 서너 차례 받은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는 일본인이 아니라…"
아직 나는 '조선인' 이라는 말을 영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Korean'
이라는 단어를 가르쳐주는 대신, 수업시간에 쓸데없는 것일랑 생각하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그저
시키는 대로나 하라며 불쾌해했다.
- <소년의 눈물> 서경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