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에서 모토코 쿠사나기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전뇌화도, 의체화도 하지 않은데다, 군인 출신도
아닌 토구사를 멤버 중 하나로 선발했다. 그가 자신을 왜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소령은 이렇게 답한다.
"전투 단위로서 아무리 우수해도 같은 규격품으로 구성된 시스템은 어딘가 치명적인 결함을 갖게 돼. 조직도
사람도 마찬가지. 특수화의 끝에 있는 건 느슨한 죽음, 그것 뿐이야." Liveral Arts를 무시하는 사회가 얻을 수
있는 전망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 사회의 결과물이 갤럭시 탭과 같은 제품일 것이다.
(…)
애플이 자사 제품을 새로이 발표할 때 마다 꼭 빼놓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contents를 만드는
툴이다. 이번 iPad 2의 발표에서도 Garage Band와 iMovie가 발표되었다. 두 프로그램의 기능은 음악과 영상
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Liberal Arts에서 보통의 개인이 가장 쉽게 다룰 수 있는 기능들이다. 여기에
사진을 찍는 기능까지 더하면, iPad 2는 세 가지의 기본적인 예술작업을 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고
소개한 셈이다.
이 두 툴의 발표는 단순히 ‘이런 게 됩니다’ 라는 자랑거리로 발표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다른 OS를 쓰는 사람
들은 ‘이 OS에도 그런 프로그램은 있다’ 고 맞선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애플이 자사의 제품 홍보에서 이 영역
의 중요성을 계속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Liberal Arts는 상식의 영역에 가까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음악을 만들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고도의 예술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냥 일상 생활에서의 잠깐의 일탈과 같은 재미있는 일로서도 할 수 있는 것
이다. 그리고, iPad 2가 그것을 지원한다는 것은, Liberal Arts의 의미를 체화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매력
이다. 실제로 iOS의 프로그램 사용의 경험이 별로 없는 필자도 iMovie는 금방 다룰 수 있다. Garage Band도 매
우 쉽게 음악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이 두 가지 툴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적인 작품을 만들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가수이거나 영화감독이 아니라면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그런 거 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 고 할 수도 있다. 아마도 삼성이라면 갤럭시 탭에 대해 ‘비즈니스용 모델이므로
그런 거는 프로그램으로 누가 만들 것이다’ 라고 할 것 같다. 그들은 이미 갤럭시 탭에 대해서도 ‘양복 주머니에
들어간다’ 고 자랑했던 경력이 있으니까.
한국에서는 이러한 의미를 잘 읽어내지 못한다. 악기를 뚱땅거리거나, 영상을 만드는 일이 ‘쓸데 없는 짓’ 이라고
세뇌 당해 온 사람들이니까. IT관련 리뷰들을 볼 때 이런 지점을 지적해내는 사람이 없는 이유도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의 IT 관련 ‘전문가’ 들 역시 기능적으로 ‘고도화된 지식’ 을 가진 사람들이지, Liberal Arts를 이해
하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애플의 노트북들은 예술가나 크리에이터에게 맞는다는 인식이 있는 이유도, 제품이 예
뻐서 그들의 미적 감각을 만족시키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에게 편하게 디자인되어 있고, 필요한 기능들 역시 이
미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어떤가? 일반의 대중, 보통의 사람들도 Liberal Arts에 우리보다 훨씬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유럽도 그렇다. 그들에게 iPad 2의 기능들은 우리가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예
를 들어, 타블렛은 악보를 보는 데 있어 최적의 기능성을 자랑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어떤 학생이 연주하러
교수 앞으로 갈 때 iPad 2에 악보를 담아가 넘긴다면 어떨까. 글쎄, 요즘의 뉴스로 보자면 두들겨 맞을 지도 모르
겠다.
(…)
삼성이 내 쪽 파는 거야 어제 오늘 이야기도 아니고, 굳이 더 말해 무엇하겠나.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이 발언은
한국에 대한 비웃음으로도 읽힌다. ‘너희들의 문화에는 Liberal Arts도 없고, Humanities도 없어. 그러니 니들이
우리를 어떻게 따라와?’ 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에 반박하기는 어렵다. 국사까지도 ‘선택과목’ 으로 만들어야 직
성이 풀리고, 모든 학생이 영어를 잘 해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잘해서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는 알려주지 않으며, Liberal Arts는 고사하고 학생들에게 빚쟁이가 되어서라도 대학 졸업장을 따야 한다고 윽박
지르는 나라에서, Garage Band의 기타줄이 눈에 들어오긴 할 것이며 iMovie로 영화는 커녕 저녁 노을이라도 한
번 찍어보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일을 하겠다면 ‘굶어 죽을 각오로 하라’ 고 윽박지르는 신문이 있는
나라에서, 누가 Liberal Arts에 관심이 있겠는가. AS를 잘 하지만, 노조가 없고, 그 iPad 2에 들어갈 부품을 만드
는 공장에서 46명이 백혈병으로 죽어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데, 누가 humanities에 입각하여 사고하겠는가.
(…)
이게 과다해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국에서나 Liberal Arts와 Humanities에 대한 개념이 없다 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미국을 위시한 나라들에게서는 당연한 것을 하지 않는 셈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그게
뭐야' 수준의 비웃음을 당할 만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에게 이 두 가지는 사람으로서 합리적으로
살기 위해 당연히 갖추어야 하는 것이며, 그런 것을 갖추지 말라고 주장하는 정부가 있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
라고 생각할 리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까인 것은 삼성인가, 아니면 삼성으로 대표되는 한국이라는 시스템인가.
삼성은 우리를 대표해서 스티브 잡스에게 비웃음을 당했다. 그런데 고맙지가 않다. 대신해서 당한 게니라, 치부
를 제대로 까 드러내 보여 준 셈이니까. 그러니까 좀 나대지라도 말지. 그리고, 우리도 그것에 대해 뭐라 말할 처
지가 못 된다. 한국에서, 과연 삼성 없이 살 수는 없는 걸까.
- miseryrunsfast <iPad 2 : 스티브 잡스에게 바보 취급을 당한 건 삼성인가 아니면 우리인가>
http://miseryrunsfast.tistory.com/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