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내는 스튜어디스였다. 대개의 스튜어디스들이 그렇듯 그녀는 훤칠한 키에 멋진 스타일을 가진, 즉 모든 남자들이 원하는 타입의 여자였다. 예쁜 여자들이 흔히 그렇듯 그녀는 구태여 착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래서 착하지 않았다. 그녀가 나와 결혼한 이 유는 순전히 괜찮은 학벌과 영화감독이라는 폼나는 직업 때문이었다. 그것이 잘못된 선 택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그녀는 한마디로 기내식 같은 여자였다. 별로 당기지는 않는데 안 먹으면 왠지 손해일 것 같고, 그래서 억지로 먹기는 먹되 막상 먹으려고 보니 뭔가 복잡하고 옹색하기만 하 고, 까다로운 종이접기를 하듯 조심스럽게 겨우 먹고 나면 뭘 먹었는지 기억도 잘 안나 고, 식후에 구정물 같은 커피를 마시다보면 뭔가 속은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갖출 건 다 갖춘 것 같은데 왠지 허전하고, 결국 포장지만 한 보따리 나오는 그런 여자였다. 그녀의 얼굴엔 언제나 '안전벨트를 매주시겠습니까, 손님?' 이라고 쓰여 있었다. 결혼 이 년차에 접어들면서 우리의 결혼생활은 경로를 이탈했다.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것이다. 원래 기내식처럼 요란하게 흔적을 많이 남기는 여자여서 곧 들통이 나고 말았다. 아내의 경고대로 안전벨트를 단단히 맸어야 했는데 나는 순진하게도 그녀를 철 석같이 믿었다. 그 바람에 충격이 더 컸다. - <고령화가족> 천명관
那由他
2013-04-28 0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