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란 매체는 근대 '과학'과 '기술'의 산물인 만큼 태생적으로 기술 합리성과 효율성을 제1원리로 둔다. 사진을 '기술적 재현' 이나 '객관적 지표' 로 정의하는 것은 그러한 과학기술적 원리에 기인해서이다. 그러 니 우리가 한 장의 사진을 보며 그리움과 연민, 기쁨과 슬픔, 희열과 회한 같은, '복잡 미묘한 인간적 감정' 에 휩싸이는 것은 그리 당연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단지 기계장치의 기계적 영상일 뿐인 사진을 보며 울고 웃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정에 잠기는 우리 자신을 의아히 여겨야 한다. 사랑하는 그 또는 그녀를 대신하여 지갑이나 침대 머리 맡에 그 연인의 사진을 고이 모셔놓고 이미지로 물 신화하는 우리의 감정에 '넌센스' 라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당신이나 나에게, 사진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 끼는 일은 숨쉬기만큼이나 자연스럽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자발적으로 사진을 '통해' 어떤 사랑의 이미지, 어떤 특별하고 일회적인 감정 상태에 잠기고 싶어한다. 사진이 현상한 과거의 한 순간에 다시 휩싸 이기를 간절히 원한다. 우리가 지나간 한 순간의 이미지에 불과한 사진을 그토록 많이 찍고, 그토록 자주 들여다 보고,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이유가 거기 있다. 그리고 때로는 소중히 간직하던 사진을 찢어버리거 나, 한 장 밖에 없는 사진을 불태워버리는 이유도 실은 애증이나 덧없는 희망의 '감정을 촉발하는 사진의 힘' 을 -마음과 달리- 근절시키고 싶어서다. (…) 그러나 엄격히 말해, 우리가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피사체에 대해서 갖게 되는 감정이라기 보다는 바로 그 이미지로부터 촉발된 감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 피사체 때 문에 발생한다고 쉽게 착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사진'이 사진 찍히는 실제 대상과 필연적 관계를 맺어야 비로소 존재하는 이미지 형식이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을때, 사진은 불가능하다. 사진 은 상상을 찍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는 사진에 담긴 '실재하는 무엇' 에 자꾸 눈이 팔려 내 마음이 그 때문 에 움직이고 있다고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이승준의 사진을 보면서 우리가 '사랑이 깨져버린 그/녀의 마음자리' 를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사실은 몇 천 분의 1초로 만들어진 기계장치 이미지에 끌리고 있는 것인데도. - 강수미 <이승준 사진에서 '깨진 사랑' 의 지각>
那由他
2013-04-24 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