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이라는 짧은 한국 체류기간 중에 내가 볼 수 있었던 작품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단편적인 견문을 바탕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문제 제기 차원에서 굳이
말한다면 한국의 근대미술은 '지나치게 예쁘기만 하다' 는 것이다. '민중미술'의 일부는
예외라 할 수 있으나, 내가 본 한에서 민중미술운동은 현재의 한국에서는 이미 역사화
되었으며, 그 맥락이 현재도 계승·발전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여기에서 '예쁘다'는 것은 찬사가 아니다. '예쁘다'는 것은 보는 이가 그다지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루하다는 것도 된다. 미술도 인간의 영위인
이상, 인간들의 삶이 고뇌로 가득할 때에는 그 고뇌가 미술에 투영되어야 마땅하다. 추
한 현실 속에서 발버둥치는 인간이 창작하는 미술은 추한 것이 당연하다. 조선 민족이
살아온 근대는 결코 '예쁜' 것이 아니었을뿐더러, 현재도 우리의 삶은 '예쁘지' 않다. (…)
'미의식' 이란 '예쁜 것을 좋아하는 의식' 이 아니다. '무엇을 미라고 하고 무엇을 추라고
할 것인가' 를 판단하는 의식이다. 자신의 '미의식'을 재검토한다는 것은 자신이 무언가를
'예쁘다'고 느꼈을 때,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느끼는지,
그렇게 느껴도 좋은 건지 되물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미의식이 실은 역사적·
사회적으로 만들어져온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근대국가는 국민들의 '미의식' 을 통제하고 지배하려 한다.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고
무엇을 추하다고 할 것인가를 국가가 결정하고 국민에게 강요한다. 어떤 특정한 미의식
을 공유하는 자들만이 같은 국민이라는 이데올로기, 말하자면 미의식을 통한 국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때때로 언급한 나치의 예술 정책이 바로 그 전형인데, 이는
나치뿐만 아니라 모든 근대국가가 공유하는 본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지배로부터
독립한 인간이고자 하는 이들은 '미의식' 에서의 독립을 쟁취해야만 한다.
- 서경식 <고뇌의 원근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