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폴리스의 지배자
우리 역시 그랬다.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시절에도 "사랑한다"는 말은 장판이 눌어붙은 여인숙마다 넘쳐났고, 사내들은 그 사탕 발린 말로 여자친구와 서툰 섹스를 나누곤 돌아누워 혼자 웃었다. '죽어도 집으로 가서 죽어라'고 통제하던 '통행금지 시대'에도 술집들은 자정이 넘으면 문을 걸어 잠그고 25도짜리 독한 진로소주를 팔았다.
어떤 것이, 어떤 통제와 규제가 있어 인간의 욕망을 막을 수 있을까? 혁명의 역사는 바로 이 '욕망 해소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지난 시대 우리가 그랬듯, 이란도 마찬가지다.
중국과 베트남처럼 이란도 외부에서 쏟아지는 정보를 통제하기 위해 페이스북과 트위터 따위의 접속을 막고 있다고 한다. 허나, 지방도시(이스파한) 허름한 인터넷카페의 청년은 그 통제를 뚫고 내게 페이스북 홈페이지를 열어줬다. 그가 그걸 할 수 있다면 다른 이들이라고 못할까? 이란 정부의 통제는 무력했다. 이것은 무언가를 '알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를 웅변한다.
검은색 히잡과 차도르를 둘러쓴 이란 여성들. 그러나, 가까이서 보는 그녀들은 모두 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진한 화장을 했다. 마스카라로 걷어올린 속눈썹 위에 잠자리가 10마리는 앉을 수 있을 정도다. 거기다 대부분 금발로 염색했다. 그 옛날 마를린 먼로처럼.
지나친 억압은 반대편으로 거칠게 튀는 탄성을 만든다. 이란 여성들이 새까만 차도르 안에 입는 '보이지 않는' 의상은 호주나 네덜란드 쇼걸들의 그것보다 화려하면 화려했지 덜하지 않다고. 그렇다. 세속을 떠난 수녀도 '속옷 사치'는 한다고 들었다. 멋낼 게 그것밖에 없잖아. 겉옷은 똑같은데. 안 그러냐? 이것은 어떠한 규제도 '아름다워지려는' 여성의 욕망을 막을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그런 이란의 2500년 전 지배자, 다리우스와 크레스크세스의 여름 별궁 페르세폴리스에 갔다. 대략 1년 10개월 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