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 란 '살(肉)' 이라는 머티리얼에서 착안한 말이다. '신체'는 '몸(身)' 이므로 좀더
총체적인 개념일 터이다. '정신과 육체' 라고는 하지만 '정신과 신체' 라고는 하지 않는
다. '영' 과 '육' 이라고는 하지만 '영' 과 '신'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육체' 란 이원론의
산물이라 애초부터 버터 냄새가 풍긴다. '신체관계' 가 아니라 '육체관계' 라고 하는 것
에는 불교적 의도가 있는 게 틀림없다. 성교란, 동종의 다른 두 머티리얼이 뒤섞이고자
하지만 끝내 뒤섞이지 못하는 일련의 작업이다. 인간은 늘 실패하는 그 머티리얼을 이
상한 만족감과 함께 갖고 돌아가는 우스꽝스러운 존재다. 물론 평소에는 그것을 숨겨
두지만.
- 히라노 게이치로 <얼굴없는 나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