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녀 시절에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서 5년을 보냈다. 그곳에서는 50개국 이상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은 철저히 제쳐놓고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공
격했다. 자기 잘못은 최대한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게 일본에서는 가장 미움받는 성격이
지만, 전원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개인의 성격이라기보다는 문화의 문제다.
거기서 내 별명이 '겸손한 마리' 였다. 무의식중에 일본의 문화와 언어에 스며든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열네 살 때 귀국했을 무렵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에
맞지 않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몸에 배었던 것 같다. 편입한 중학교의 친구들을 향해 공
격적인 말투를 밀고 나갔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처음에는 새로 들어온 나를 배려
해서 그런가 했는데,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쇠귀에 경 읽기다. 반격할 기색이 전혀 없다.
이렇게 되니 도리어 불안해진다.
1년 정도 걸려서 가까스로 서양인의 공격적인 말투가 상대방의 반격을 전제로 성립한다
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일본의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알게 되었다. 일본인은
상대가 받아들일 것까지 헤아려서 표현을 고른다. '어쩌면 이다지도 다정하고 위대한
민족이 있을까. 대단하다' 하고 감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는 자신이 상처 입지 않기 위해서,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
을 회피하기 위해서란 사실을 깨달았다. 일본에서 인터넷 익명 게시판이 이렇게나 유행
하는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익명이면 무서울 만큼 공격적이다. 자신의 얼굴과 이름
이 드러나려 하면 순식간에 공격성을 억제해 다정하고 정중해진다. 꽤나 무섭다.
- 요네하라 마리 <발명 마니아>